3장 행록3장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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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 흥해의 부친은 상제를 서원규의 집에서 찾았으되 헛탕을 치니라. 그는 또 화가 치밀어 상제가 사람을 죽이고 도망을 쳤다고 마구 지껄이면서 상제가 계실만한 곳을 여기 저기 찾으니라. 그는 상제를 찾다 못 찾으니 상제의 식구들을 전주군 화전면 화정리에서 찾고 행패를 부렸도다. 이 때 상제의 가족은 이곳에 있는 이경오(李京五)의 좁은 방에 이사하여 살고 있었도다. |
<주해>
상제의 가족은 후천의 수인 오원수가 되고, 12,960이 된다. 화정리(花亭里) 이경오(李京五)의 집에서 계시다가 가중(家中)의 난이 일어나 피난하신 것이다. 상제께서 모두들 제각기 흩어져서 돌아가라. 십년후에 다시 만나리라. 십 년도 십 년이요. 이십 년도 십 년이요. 삼십 년도 십 년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누가 여쭈기를 “사십 년은 십 년이 아니 오니까.” 이에 상제께서 “사십년도 십 년이나 그것을 넘지는 않으리라”고 말씀 하시고 모두 돌려 보내시니라.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도수에서 다시 만나는 도수는 땅에서 하늘로 가는 도수가 된다.
서울 경(京)은 도읍이 되고, 후천의 도읍은 신도(神都)가 되므로 계룡이 있는 손(巽)이 된다. 그러므로 경오(京五)의 좁은 방으로 상제의 가족이 이사를 온 것이 되니 상제의 가족은 신도들이 아닌가?
상제께서 처음으로 의법(醫法)을 화정동(花亭洞)에서 베푸셨으니 이경오(李京五)는 화정동에 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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