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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북소리
댓글 0건 조회 793회 작성일 21-08-1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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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姜)씨는 상고 신농(神農)씨로부터 시작되고 성(姓)으로서는 원시성이로다. 우리 나라에 건너온 시조(始祖)는 이식(以式)이니 중국(中國) 광동(廣東) 강씨보(姜氏譜)에 공좌태조 이정천하후 양제찬위 공이퇴야(公佐太祖 以定天下後 煬帝竄位 公以退野)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우리 나라 숙종 을축년보에 ‘수벌 고구려시 공위병마원수 지살수이 지수장란 잉류불반(隋伐高句麗時 公爲兵馬元帥 至薩水而 至隋將亂 仍留不返)’의 기록이 있는 바와 같이 진주강씨(晋州姜氏)는 중국(中國) 수양제(隨煬帝) 때에 우리 나라에 건너 오니라. 시조(始祖) 이식으로부터 三十一대 자손 세의(世義)가 고부(古阜)로 낙향한 후 六대에 진창(晋昌)․우창(愚昌)․응창(應昌) 삼 형제도 이곳에 살았도다.



<주해>

​공좌태조 이정천하후 양제찬위 공이퇴야(公佐太祖 以定天下後 煬帝竄位 公以退野)는 고구려 병마 도원수인 이식장군이 수나라 문제(文帝)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여러 차례 침범함에 을지문덕장군과 함께 살수대첩에 승리하여 천하를 평정한 후에  수나라 양제(煬帝) 때에 자리에서 물러나 공(公)은 일반백성으로 돌아와 이때 우리 나라에 건너 왔다는 내용이고, 이식으로부터 三十一대 자손 세의(世義)가 고부(古阜)로 낙향한 후 六대에 진창(晋昌)․우창(愚昌)․응창(應昌) 삼 형제도 이곳에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상제께 "이 세상에 성으로는 풍(風)성이 먼저 있었으나 전하여 오지 못하고 다만 풍채(風采). 풍신(風身). 풍골(風骨)등으로 몸의 생김새의 칭호만으로 남아올 뿐이오. 그 다음은 강(姜)성이 나왔으니 곧 성의 원시가 되느니라. 그러므로 개벽시대를 당하여 원시반본이 되므로 강(姜)성이 일을 맡게 되었나니라"고 하셨다. 풍(風)성은 손풍(巽風)이 되어 이곳이 원시반본하는 곳이나 없으므로 강(姜)성으로 오셨다고 밝히셨다. 그러므로 손풍(巽風)은 풍류(風流)가 되며, 신선의 도가 나오는 곳이 되므로 없어졌다가 다시 상제께서 선운(仙運)을 여시려고 오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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