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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교운1장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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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북소리
댓글 0건 조회 929회 작성일 21-06-1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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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 七월에 동학당원들이 원평에 모였도다. 김형렬이 상제를 뵈옵고자 이곳을 지나다가 동학당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상제를 찾아뵈옵고 그 사실을 아뢰이니 상제께서 그 모임의 취지와 행동을 알아오도록 그를 원평으로 보내시니라. 그는 원평에서 그것이 일진회의 모임이고 보국안민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대회 장소가 충남(忠南) 강경(江景)임을 탐지하고 상제께 되돌아가서 사실을 아뢰었도다. 이 사실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그네들로 하여금 앞으로 갑오(甲午)와 같은 약탈의 민폐를 없애고 저희들 각자가 자기의 재산을 쓰게 하리라. 내가 먼저 모범을 지어야 하리라” 말씀하시고 본댁의 살림살이와 약간의 전답을 팔아 그 돈으로 전주부중에 가셔서 지나가는 걸인에게 나누어 주시니라. 이로부터 일진회원들은 약탈하지 않고 자기 재산으로 행동하니라. 이 일로써 전주 부민들은 상제께서 하시는 일을 감복하면서 공경심을 높였도다.



<주해>

​갑오농민전쟁 당시 동학군이 부자들을 강제로 동학에 가입을 시킨 후 찬조금을 내게 한다든지 또는 무력으로 재물을 마구 뺏었다. 이 시기의 진보회는 갑오년과 같이 드러내놓고 약탈을 저지를만한 처지가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후 진보회가 일진회와 합병되어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을 하지는 않았고, 자기네 돈으로 운영을 하였다. 또 그들은 일본으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기도 하였다. 백성을 위한일이 백성의 돈을 수탈해서 문명개화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는데, 상제께서는 제일 힘들어하는 걸인에게 돈을 나누어 줌으로서 평등한 세상으로 천지도수를 돌려서 공사하므로 그들도 따라하였던 것이다. 일진회(一進會)가 十一로 나아가는 모임이다. 十一이 土이고 황극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임을 상징하고 있다. 그곳이 원평이 되므로 보국안민을 목적으로 내세운 것이다. 상제께서는 불평등의 세상에서 평등의 세상으로 개혁해 나가려는 것을 도우신 것이다. 또 상제께서 일진회가 발족되던 때부터 관을 버리시고 삿갓을 쓰고 다니신 삿갓에 대한 일화를 보자. 대표적인 사람으로 김병연인 김삿갓은 평생을 삿갓을 쓰고 다녔는데, 1811년 홍경래의 난 때 당시 항복했던 선천부사(宣川府使) 김익순의 손자이다. 난이 평정된 뒤에는 조부는 처형되었고 이로 인해 가문이 멸족 당했으며,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김병연의 모친이 영월로 이사하여 살고 있었다. 김병연은 영월의 관아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가산군수 정시를 찬양하고 선천부사 김익순을 규탄하라'는 시제가 나오자 병연은 김익순이 자기의 조부인 줄도 모르고 "한 번은 고사하고 만 번 죽어 마땅하고.... 너의 치욕스러운 일동국의 역사에 유전하리."라고 준엄하게 질타한 시로 장원 급제했다. 그 뒤에 조부가 김익순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병연은 삿갓을 쓰고 병연이라는 이름도 버렸으며, 새 이름은 삿갓을 의미하는 '립'(笠)을 사용하였다. 하늘을 볼 면목이 없다고 쓰고 다녔던 방랑시인 김삿갓이다. 일진회(一進會) 또한 평생 조부을 뵐 면목이 없음을 아시고 공사를 단행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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