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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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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북소리
댓글 0건 조회 656회 작성일 21-09-0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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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느 날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장차 청일 사이에 싸움이 두 번 나리니 첫번에는 청국이 패하리라. 다시 일어나는 싸움은 십 년이 가리니 그 끝에 일본이 쫓겨 들어가려니와 호병(胡兵)이 들어오리라. 그러나 한강(漢江) 이남은 범치 못하리라”고 하시고



<주해>

​청일 사이에 두 번 일어나는 싸움은 각각 ‘청일전쟁’과 ‘중일전쟁’을 뜻한다. 청일전쟁(淸日戰爭)은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1894(甲午)년 7월 25일부터 1895(乙未)년 4월까지 벌인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로 이끌어 대만 등 중국 영토를 식민지로 확보하고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제국주의 국가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중일전쟁(中日戰爭)은 일본이 제국주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 내륙으로 공격할 빌미를 찾고 있던 차에 1937(丁丑)년 7월 7일 베이징(北京) 교외의 작은 돌다리인 노교구(蘆溝橋)에서 시작을 해서 1945(乙酉)년 8월 15일까지 대략 10년간 일어난 전쟁이다. 1945(乙酉)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됨에 따라 한국은 카이로회담에서 독립이 약속되어 있었으나, 8월 9일 뒤늦게 대일전에 참가한 소련군은 허울뿐인 관동군을 격파하면서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8월 13일 제25군단의 일부가 청진에 상륙하고, 8월 22일에는 평양에 진주하였다. 미군 제24사단은 9월 8일에야 인천에 상륙하여 이튿날 서울에 진주하였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에 미ㆍ소 양군이 분할 진주함으로써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5년 뒤 북침으로 인한 한국전쟁은 1950(庚寅)년 6월 25일에 발발하여 1953(癸巳)년 7월 27일 휴전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호병(중국)은 한강 이남을 넘지 못했던 것이었다. 후천에는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린다고 하시었다. 천하가 한 집안이 되는 정역의 수리(數理)가 십일(十一)에 있고, 그 시작점이 기서재동(其瑞在東)이고, 3과8에는 동쪽을 나타내는 목(木)이고, 합한 수가 11로 천하가 한집안이 되는 역리가 있으므로 3ㆍ8선으로 남과 북이 나누어졌고, 여기에서 천하가 한집안이 되는 법을 나오게 공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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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8선이 휴전선으로 대처를 하게 해서 중앙에서 태극모양을 형성하고 사대강국이 대치된 상황은 마치 태극을 중심으로 사상이 배치된 한국의 국기인 태극기의 형상이다. 이러한 내용을 더 깊게 분석해보면, 후천에서는 오원(五元)으로 가는 세상이므로 오선위기(五仙圍碁)로 천하의 기운을 돌리셨던 것이다. 즉 바둑의 도수였다. 바둑의 도수가 38선이다. 가로 19선과 세로 19선의 합이 38선이다. 음과 양으로 대립을 하면서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것은 이 땅에 선경세상을 여시기 위해서 공사를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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