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대전 권 14 - 역학계몽(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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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 옹씨가 말했다. "「하도」는 운행하는 순서가 북쪽[1ㆍ6, 水]에서부터 오른쪽인 동쪽[3ㆍ8, 木]으로 돌아서 상생하니, 본래 그러한다. 그렇지만 대대對待하는 자리는 북쪽의 1ㆍ6, 水는 남쪽의 2ㆍ7, 火를 이기고, 서쪽의 4ㆍ9, 金은 동쪽의 3ㆍ8, 木을 이기니, 상극함이 이미 상생 가운데에 깃들어 있다. 「낙서」는 운행하는 순서가 북쪽[1ㆍ6, 水]에서부터 오른쪽인 서쪽[2ㆍ7, 火]으로 돌아서 상극하니, 본래 그러하다. 그렇지만 대대對待하는 자리는 동남쪽의 4ㆍ9, 金은 서북쪽의 1ㆍ6, 水를 낳고, 동북쪽의 3ㆍ8, 木은 서남쪽의 2ㆍ7, 火를 낳으니, 상생하는 것이 이미 상극 가운데 깃들어 있다. 대개 조화의 운행이 낳기만[生] 하고 이기지[克] 않으면 낳은 것은 좇아서 재제할 수 없고, 이기기만 하고 낳지 않으면 이기는 것은 또한 때때로 틈이 벌어지고 끊김이 있다. 이것이 「하도」와「낙서」의 생수와 성수의 오묘함이니, 각자가 완전하게 갖추지 않은 적이 없다." |

<주해>
운행하는 순서는 상생하고 대대對待는 상극하는 것은 하도河圖요, 운행하는 순서는 상극하고 대대對待는 상생하는 것은 낙서洛書이다. 하도는 天이요, 낙서는 地이니 운행하고 대대함에 서로 반대가 되니 하도(河圖)는 미제(未濟)의 상인데 역생도성(倒生逆成)하므로 선천의 태극(太極)이요, 낙서(洛書)는 기제(旣濟)의 상인데 도생역성(逆生倒成)하므로 후천의 무극(无極)이다.
양이 극하면 음이요, 음이 극하면 양이니 역(易)은 거슬러가므로 극(極)하면 반대로 간다함이 아니겠는가? 천지의 이치는 삼원(三元)이니 무극ㆍ태극ㆍ황극이요, 무극이태극ㆍ태극이황극ㆍ황극이무극이니, 무극에 무극신하고 태극에 태극신하고 황극에 황극신하니 이제삼황(二帝三王)의 도가 또한 삼극지도(三極之道)가 아니겠는가?
경원(慶元: 남송4대 寧宗의 연호) 기미(己未)년 겨울에 선생 文公[주자]이 나[채침]에게 서집전(書集傳)을 짓게 하시고 이듬해에 선생은 돌아가셨다. 또 그러한 지 십년(十年)에야 비로소 책을 펴내니 모두 약 만 자정도 된다. 아! 서경(書經)을 어찌 쉽사리 말하겠는가. 2제(二帝) 3왕(三王)의 세상 다스리던 큰 원리와 원칙이 모두 이 책에 실렸으니, 나 같은 얕은 견문과 낮은 학식으로 어찌 그 심오한 진리를 다 밝힐 수 있으며, 또 수 천년 뒤에 나서 수 천년 전의 일을 풀어서 밝히려는 것 역시 무척이나 어렵다. 그러나 2제 3왕의 다스림은 道에 근본하고, 2제 3왕의 도는 마음에 근본을 둔 것이니 바로 그 마음을 체득하면, 도와 더불어 다스림을 진실로 얻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오직 일심을 갖고 중용의 도를 취함은 堯, 舜, 禹가 서로 전한 심법이요, 중정(中正)의 도를 정하여 만민의 삶의 푯대를 세움은 상의 탕과 주의 무왕이 서로 전한 심법이니, 무릇 德과 仁과 敬과 誠은 말이 비록 서로 다를지라도 이치는 곧 하나이니, 이 마음의 신묘함을 밝히는 바가 아님이 없기 때문이다. 하늘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유래한 바를 엄숙히 하는 것이요, 백성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그 마음이 행하는 바를 삼가는 것이니, 예악으로 교화함은 마음의 발함이요, 온갖 제도와 문물은 마음의 드러남이요,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바르게 함은 마음의 미루어 확장함이니, 마음의 덕이 성(盛)하다. 2제 3왕은 이 마음을 잘 간직한 사람들이요, 하의 걸과 상의 수는 이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이요, 태갑과 성왕은 간신히 이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이다.마음을 간직하면 다스려지고 잃어버리면 어지러워지나니 다스려짐과 어지러워짐의 나누임이 돌아보건대 마음을 간직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는 여하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후세의 人主로서 二帝三王의 다스림에 뜻을 둔다면, 그 道를 구하지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며, 二帝三王의 道에 뜻을 둔다면 그 마음을 구하지 아니할 수 없으리니, 그 마음을 구하는 요체는 이 책을 버린다면 무엇으로써 찾으랴. 내가 이 글을 읽은 이래 그 뜻을 깊이 생각하고, 여러 말씀을 참고하여, 자세히 이해하고 문맥에 통함에, 이에 감히 절충하니, 은미한 말씀과 오묘한 뜻은 예전에 들은 바를 많이 記述했고, 이전(二典: 堯ㆍ舜典)과 우모(禹謨)는 선생이 모두 일찍이 바로 잡았는데, 손때가 묻어서 나는 광택으로 오히려 새 것처럼 보이니 아! 애달프구나. 集傳은 본시 선생이 명한 바라, 선생의 학설을 引用함에는 구태여 다시 다른 설과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四代의 書를 나누어 十卷으로 하니, 때에 따라 글은 다르지만 道로써 다스림은 같다. 聖人의 마음씨가 글에 나타남이 마치 造化의 솜씨가 萬物에 드러남과 같은 것이라, 정밀하고 깊지 못하면 능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이 堯舜禹湯文武周公의 마음속 은미한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하겠으나, 堯舜禹湯文武周公의 글은 이 훈고(訓고)에 따르면 그 가리키는 뜻의 대략은 크게 얻을 수 있다. 가정(嘉定) 기사 삼월(己巳 三月) 기망(旣望)에무이 채침(武夷 蔡沈:주자의 제자이자 사위)이 머리말(序)을 쓰노라.
慶元己未冬 先生文公 令沈 作書集典 明年 先生 歿
又十年 始克成篇 總若干萬言 嗚呼 書豈易言哉
二帝三王 治天下之大經大法 皆載此書 而淺見薄識 豈足以盡發蘊奧
且生於數千載之下 而慾講明(生)於數千載之前 亦已難矣.
然 二帝三王之治 本於道 二帝三王之道 本於心 得其心 則道與治 固可得而言矣
何哉 精一執中 堯舜禹相授之心法也 建中建極 商湯 周武 相傳之心法也
曰德 曰仁 曰敬 曰誠 言雖殊而理則一 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
至於言天 則 嚴其心之所自出 言民 卽 謹其心之所由施 禮樂敎化 心之發也
典章文物 心之著也 家齊國治而天下平 心之推也 心之德 其盛矣乎
二帝三王 存此心者也 夏桀商受 亡此心者也 太甲成王 困而存此心者也
存則治 亡則亂 治亂之分 顧其心之存不存如何耳
後世人主 有志於二帝三王之治 不可不求其道
有志於二帝三王之道 不可不求其心 求心之要 舍是書 何以哉
沈 自受讀以來 沈潛其義 參考衆說 融會貫通 乃敢折衷
微辭奧旨 多述舊聞 二典禹謨 先生 盖嘗是正 手澤 尙新 鳴平惜哉
集傳 本先生所命 故 凡引用師說 不復識別
四代之書 分爲十卷 文以時異 治以道同
聖人之心 見於書 猶化工之妙 著於物 非精深 不能識也
是傳也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心 未必能造其微
於堯舜湯文武周公之書 因是訓誥 亦可得其指意之大略矣
嘉定 己巳 三月 旣望 武夷 蔡沈 序 嘉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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