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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진경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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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1

 

 

 

1. 옥황상제(玉皇上帝)께서 을미년(乙未年) 새해에 하명(下命)하시기를『청주사건(淸州事件)이 아직 결말(結末)을 보지 못한 채 해를 넘겼으나 그동안 도중(道中)이 안정(安定)되고 각 (各)지방(地方)의 포덕(布德)이 늘어난다 하니 오직 구천상제(九天上帝)의 덕화(德化)에 감은(感恩)할 뿐이니라.
이제 속(速)히 도장(道場)을 영건(營建)하여 상제(上帝)의 영대(靈臺)를 모셔야 하나 신축(新築)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于先) 이 집을 수리(修理)하여 봉안(奉安)하리니 시행(施行)하도록 하라.』하시므로 임원(任員)들이 상제(上帝)의 뜻을 전(全) 도인(道人)에게 전(傳)하니 앞을 다투어 성금(誠金)을 원납(願納)하므로써 이월(月) 초(初)에 영선공사(營繕工事)를 착공(着工)하게 되니라.


2. 이에 앞서 보수동(寶水洞)에서는 수년간(數年間) 일건(件)의 화재(화재)도 발생(發生)하지 않았다 하여 시당국(市當局)으로 부터 표창(表彰)과 포상(褒賞)을 받으니 동회(洞會)에서는 이로써 산정(山亭) 전전(前田)에서 동민위안윷놀이대회(洞民慰安擲柶大會)를 개최(開催)하니라. 산정(山亭) 지붕으로부터 만국기(萬國旗)를 늘여 달고 전(全) 동민(洞民)이 농악(農樂)과 윷놀이로 큰 잔치를 이루었는데 상제(上帝)께서도 산정(山亭) 마루에 임어(臨御)하셔서 감상(鑑賞)하시며 임원(任員)들도 함께 즐기도록 하시니라.

3. 이때 중하(重夏)가 시측(侍側)하였다가 그 숙부(叔父) 차석(且錫)이 농악대(農樂隊)에서 상(上)쇠잡이를 하며 즐거워함을 보고 과거(過去) 고향(故鄕)에서 중부(仲父)가 농악(農樂)은 상민(常民)의 놀이라 하여 상(上)쇠잡이한 숙부(叔父)를 질타(叱咤)하던 옛일이 상기(想起)되어 숙부(叔父)의 행동(行動)을 부당(不當)하게 여기니라 .
상제(上帝)께서 중하(重夏)의 마음을 아시고『너는 네 숙부(叔父)의 행동(行動)을 허물하지 말라. 도인(道人)들은 농악(農樂)과 척사(擲柶)의 진의(眞意)가 무엇이며 또 왜 하는지 그 소이(所以)를 바로 알아야 하느니라.』하시고 초한전(楚漢傳)을 내어주시며『이 책(冊)을 잘 읽어보라.』하시니라.

4. 수일(數日) 후(後)에 중하(重夏)가 초한전(楚漢傳)을 다 읽고 책(冊)을 올리니 말씀하시기를『이 책(冊)을 너에게 읽게 함은 이 속의 몇가지 뜻을 바로 알게 하려 함이니라.
첫째로 이 책(冊)에는 초패왕(楚覇王)이 포악무도(暴惡無道)한 사람으로 기술(記述)되어 있으므로 너희들도 의심(疑心)하였을 것이나 알고보면 그것은 선천상극시대(先天相剋時代)에 전쟁의 승자(勝者)가 패자(敗者)를 무도(無道)한 자(者)로 조작(造作)하는 통례(通例)에 불과(不過)하고 실제(實際)는 그러하지 아니하니라.
그리하므로써 초패왕(楚覇王)으로 하여금 생전(生前) 사후(死後)를 통한 철천(徹天)의 포원(抱寃)을 더하여 와신상담(臥薪嘗膽) 해원(解寃)하려 함이 아니냐?』하시니라.

5. 이어『둘째는 초패왕(楚覇王)이 해하(垓下)에서 이십팔기(騎)만으로 한왕(漢王)의 백만대군(百萬大軍)의 포위(包圍)를 뚫고 오강(烏江)으로 탈출(脫出)할 때 "천망아(天亡我)요 비전지죄 (非戰之罪)라."하며 사용한 병법이 매화둔(梅花遁)이니 이것이 척사(擲柶) 마판(馬板)의  진법(陣法)이니라. 마판(馬板)이 방점(房點)을 중심(中心)으로 이십팔점(點)이 있음은 초패왕(楚覇王)을 중심(中心)으로 이십팔기(騎)가 늘어선 국상(局象)이며 농악(農樂)도 원칙(原則)은 영기(令旗)를 중심(中心)으로 이십팔명(名)이 일단(團)이 되어 장사진(長蛇陳) 또는 궁을진(弓乙陣) 등(等)의 진(陣)을 치고 노는 법(法)이니 이도 다 뜻이 있느니라.
또 윷은 일생(生)이 이생(生)사로 만드는 법(法)이나 사생오(四生五)로 변화(變化)하는 형상 (形象)자체(自體)가 분명(分明)한 음양(陰陽)이며 사상(四象) 오행(五行)의 태극진리(太極眞理)가 내포(內包)되어 있음이니라.
너희가 해원(解寃)을 하자면 상생(相生)의 도(道)라야 하므로 상생행마법(相生行馬法)을 쓰도록 한 것이며 이번에 농악(農樂)과 척사(擲柶)로 놀게 됨이 우연(偶然)이거나 인위(人爲)가 아니라 모두 도수(度數)에 있는 일이니라.
셋째는 이 모든 일이 장차(將次) 도강이서(渡江而西)할 도수(度數)의 조짐(兆朕)이니라.』하시니라.

6. 상제(上帝)께서는 도장영선공사(道場營繕工事) 기간(期間)에 산정(山亭)에서 백일공부(百日工夫)를 하시며 종순(鍾淳)과 재승(在勝)으로 하여금 교대(交代)로 시봉(侍奉)하게 하시고 공사감독(工事監督)은 오치국(吳治國)을 명(命)하셔서 건물내부(建物內部) 전체(全體)를 개조(改造)하여 상층(上層)은 영대(靈臺)와 공부실(工夫實) 하층(下層)은 임원(任員)들의 회관(會館)과 거실(居室)로 정(定)하시니라.
이때 장마가 들어 비에 젖은 목재(木材)를 불에 말려 쓰는 등(等)의 애로(隘路)가 많았으나 정성(精誠)을 다하여 사월(月) 중순(中旬)에 완공(完工)하니라.

7. 상제(上帝)께서 1955년 삼월(月) 초(初)부터 영대(靈臺)에 봉안(奉安)하실 구천상제(九天上帝) 진영(眞影)을 구(求)하시고자 용화(容和)를 금산사(金山寺)로 보내셔서 미륵불상(彌勒佛象)을 촬영(撮影)하게 하시는 등(等) 다방면(多方面)에서 진영(眞影)을 모셔오게 하셨으나『모두 옥안(玉顔)이 다르다.』하시며 소화(燒火)하시고 청봉(靑峯)으로 하여금 마산(馬山)에서 데려온 화공(畵工) 이희백(李熙伯)에게 진영(眞影)을 그리도록 하 시니라.
그는 본래(本來) 농아였으며 산정(山亭) 공부실(工夫室) 옆 방(房)에서 상제(上帝)께서 지시(指示)하심에 따라 구도(構圖)하고 도장(道場) 하층방(下層房)에서 그리되 다른 사람의 출입(出入)을 금(禁)하셨으며 화공(畵工)은 매일(每日) 목욕재계(沐浴齋戒) 분향(焚香)하고 외출(外出)과 주연(酒煙)을 금(禁)하며 십오일(日)만에 칠성대제(七星大帝)의 위영(位影)과 함께   완성(完成)하니라.
또 서가여래(釋迦如來)와 관성제군(關聖帝君)의 영정(影幀)은 어느 중국인(中國人)으로부터 구(求)하시니라.

8.  사월(月) 초(初) 어느날 중하(重夏)가 산정(山亭) 공부실(工夫室) 옆 방(房)에서 상비원(常備員)과 함께 철야(徹夜) 시종(侍從)하다가 새벽에 한 꿈을 꾸니 상제(上帝)께서 면관용포(冕冠龍袍)로 옥경(玉京) 용상(龍床)에 임어(臨御)하셨는데 용안(龍顔)이 일월(日月)처럼 빛나시고 좌우(左右)에 선관선녀(仙官仙女)가 시립(侍立)하니라.
불식간(不識間)에 사배(拜) 부복(俯伏)하니 상제(上帝)께서 질책(叱責)도 같고 호령(號令)도 같이 말씀하시되 그 뜻을 모르고 꿈을 깨니라. 이러한 몽사(夢事)가 연(連)삼일(日) 거듭되므로 신이(神異)하고 민민(憫憫)하여  할 바를 모르다 가 용직(龍稙) 포감(布監)에게 몽사(夢事)를 말하고 그 뜻이 무엇이며 우리는 어찌하여야 옳은 지를 수의(酬議)하니 이포감(李布監)이『그 꿈이 천하(天下)의 대몽(大夢)이로다. 이는 천기(天機)에 속(屬)하며 또한 도(道)로서도 큰 도수(度數)니라.
과거(過去) 태인도장(泰仁道場) 영건(營建) 전(前)에는 도주(道主)님을 정산(鼎山)님으로 봉칭(奉稱)하다가 영건(營建) 후(後)부터 비로소 도주(道主)님으로 봉칭(奉稱)하였으니 이번(番)에는 그 이상(以上)의 도수(度數)가 있을 몽조(夢兆)니라.』하니라.
중하(中夏)가 다시『구천상제(九天上帝)님께서도 평천하(平天下)는 내가 할 터이니 치천하(治天下)는 너희가 하라.
치천하(治天下) 오십년(年) 공부(工夫)니라 하셨으니 도주(道主)님을 지존(至尊)의 위(位)에 봉대(奉戴)하고 용상(龍床)도 마련하여 인덕도수(人德度數)에 맞추어드려야 함이 우리의 당연(當然)한 도리(道理)인듯 하오이다.』하니 이포감(李布監)도 동의(同意)하므로 전(全) 임원(任員)을 소집(召集)하여 이를 공의(公議)에 붙인 바 전원(全員) 찬동(贊同)하니라.

9. 임원(任員)들은 즉시(卽時) 큰 교의(交椅)  하나를 사서 용상(龍床)으로 하고 새 도포(道袍) 한 벌을 마련하여 용포(龍袍)로 한 다음 이십칠일(日) 조회(朝會) 전(前)에 중하(中夏), 규오(奎五), 윤섭(允燮), 한경(漢慶)이 도인(道人) 대표(代表)로 도장(道場) 상층(上層) 존전(尊前)에 올리고 부복(俯伏) 상고(上告)하기를『이제 태극(太極)의 진리(眞理)가 이광 대도(以光大道)하고 이홍대업(以弘大業)할 기틀이 성취(成就)되었사오니 도주(道主)님께옵서 지존위(至尊位)에 등극(登極)하셔서 덕화(德化)를 만방(萬邦)에 베풀어 주옵소서.
이 교의(交椅)는 지존위(至尊位)에 등극(登極)하실 용상(龍床)이옵고 도포(道袍)는 용포(龍袍)로 올리오니 즉위(卽位)하옵소서.』하니라. 상제(上帝)께서『너희가 지금(只今) 무슨 말을 하느냐? 속(速)히 물러가라.』하셨으나 중하(中夏) 등(等) 이 연(連)삼회(回) 계속(繼續)하여 간원(懇願)하니『그만하면 알았으니 내려 가라.』하시니라.
임원(任員)들이 이 사실(事實)을 전(全) 도인(道人)에게 선포(宣布)하니 일제(一齊)히 환호(歡呼)하고 자차이후(自此以後) 상제(上帝)를 지존(至尊)으로 봉칭(奉稱)하니라.

10. 상제(上帝)께서 다음날 봉천명일(奉天命日)을 기(期)하여 도장영건(道場營建)과 영대봉안 (靈臺奉安) 치성(致誠)을 아울러 봉행(奉行)하시며 공사(工事)에 공(功)이 많은 도인들을 모두 참례(參禮)하도록 하시니라.
치성(致誠)에 앞서 몸소 영대(靈臺)를 설위(說位)하시니 그 위차(位次)와 배례(拜禮)의 회수(回數)는 다음 표(表)와 같으니라.

영 위(靈 位)
 배례회수(拜禮回數)
 배례순차(拜禮順次)
 
관성제군(關聖帝君) 위영(位影)
 평(平) 재배(再拜)
 4
 
옥황상제(玉皇上帝) 위지(位紙)
 평(平) 사배(四拜)
 2
 
구천상제(九天上帝) 진영(眞影)
 법(법) 사배(사배)
 1
 
석가여래(釋迦如來) 위영(位影)
 평(平) 삼배(三拜)
 3
 
칠성대제(七聖大帝) 위영(位影)
 평(平) 재배(再拜)
 5

11. 상익(上翼) 포감(布監)은 그 처사(處事)가 독선적(獨善的)이라 하여 관하임원(管下任員)에게 불신임(不信任)되고 매일(每日) 장취(長醉)로 인한 주벽(酒癖)이 심(甚)하므로 상제(上帝)께서 상정시(上廷時)마다『상급(上級) 임원(任員)된 체통(體統)을 지키라.』하시니라.
이날도 만취(滿醉)하여 치성준비(致誠準備)에 참예(參詣)하지 않더니 여러 임원(任員)의 권유(勸誘)에 못이 겨 치성(致誠) 후(後)에 올라와서 상층(上層) 치성(致誠) 존전(尊前)에 무례하게 올라감을 한경(漢慶), 명구(命求) 등(等)이 강제(强制)로 귀가(歸家)시키니라.

12. 이날 밤에 한경(漢慶), 윤섭(允燮) 등(等)이 상익(上翼)을 찾아가 그 잘못을 엄중(嚴重) 힐난(詰難)하고 『포감(布監)이 아무리 공로(功勞)가 많다 하여도 어찌 감(敢)히 지존(至尊)께 범상(犯上)하고자 합니까?』 하니 그는 도리어 대로(大怒)하여 호통치며 대항(對抗)하므로 서로 언쟁(言爭)하고 돌아왔는데 그 이튿날 사망(死亡)하니라.
상제(上帝)께서 부음(訃音)을 들으시고 생전(生前)의  공로(功勞)를 상기(想起)하시며 비도(悲悼)하시고 후장(厚葬)하도록 하명(下命)하시니라.

13.  오월(月) 일일(日)에 상제(上帝)께서 임원(任員)들을 위계(位階)에 따라 시좌(侍坐)시키신 자리에서 충주방면(忠州方面)의 궐임(闕任)된 포감(布監)을 보궐임명(補闕任命)하시니라.
먼저 충주방면(忠州方面)을 충주(忠州)와 괴산(槐山) 두 방면(方面)으로 나누셔서 충주방면(忠州方面)에는 부포감(副布監) 박 한경(朴 漢慶), 괴산방면(槐山方面)에는 유철규(柳喆珪)를 각각(各各) 포감(布監)으로 승급(昇級) 보임(補任) 하셨으며 종래(從來) 임규오(林奎五) 포감(布監)의 괴산방면(槐山方面)은 청주방면(淸州方面)으로 개칭(改稱)하시니라.

14. 이때 한경(漢慶)은 내심(內心) 충주방면(忠州方面)의 분할(分割) 자체(自體)도 그러하거니와 또 자신(自身)이 선배(先輩)임에도 관할(管轄) 호수(戶數)가 괴산방면(槐山方面)보다 적음을 불만(不滿)히 여기니라. 상제(上帝)께서『너는 무엇이 부족(不足)하고 무엇이 불만(不滿)이냐? 네 앞에서 포감(布監)이 한 사람 더 나고 너는 수포감(首布監)이 되지 않았느냐?
불만불평(不滿不平)은 곧 내게 대(對)한 불신(不信)이니 지족지지 종대이(知足知止 從大義)라. 너는 혁신하라.』하시며 책망(責望)하시니 한경(漢慶)이 고두사죄(叩頭謝罪)하니라.

15. 상제(上帝)께서 임원(任員)들에게 훈교(訓敎)하시기를『무슨 일이든지 첫 술에 배부를 생각은 말라. 농사(農事)나 장사도 그러하거니와 공부(工夫) 수도(修道) 또한 그러하니 도통(道通)에 욕심(慾心)을 내지 말라. 욕심(慾心)에는 욕통(慾通)이요, 도심(道心)이라야 도통(道通)이니라.』하시니라.

16. 또『명(名) 상(尙)하는 자  명(名)에 망(亡)하고, 이(利)를 탐(貪)하는 자(者) 이(利)에    실(失)하며, 주(酒)를 기(嗜)하는 자  주(酒)에 침(沈)하고, 색(色)을 호(好)하는 사람은 색(色)에 몰(沒)하느니 만인간(萬人間)이 어찌 망실침몰(亡失沈沒)하는 길만 자취자행(自就自行) 하고 있느냐? 도인(道人)들은 이것을 신지계지(愼之戒之)할지어다.』하시니라.

17.『남을 속임에 죄(罪)가 되나 남을 속이기는 쉽고 제마음을 스스로 속이는 것은 양심(良心)에 가책(呵責)되므로 그 죄(罪)가 더 크니라.
그러므로 도인(道人)은 무자기(無自欺)라야 하느니 이 곧 도심(道心)이요, 태극심(太極心)이니라.』하시니라.

18.『절주(節酒)는 군자심(君子心)이되 폭주(暴酒)는 소인심(小人心)이니라.
술 뿐이랴 밥도 과식(過食)하면 병(病)이 되느니 도(道)를 닦음도 이와 같아서 소인심(小人心)으로 하면 소극 퇴보(消極 退步)하든지 방심(放心) 광신(狂信)이 되기 쉬우니라.』하시니라.

19.『너무 먹으면 창증(脹症)이 생기고 너무 못 먹으면 허증(虛症)이 생기며 너무 잘 입으 면 사치(奢侈)요, 너무 못 입으면 남루(襤樓)니라.
도인(道人)은 불가과잉(不可過剩), 불가불급(不可不及), 불가부족(不可不足)이니 이 또한 음양합덕(陰陽合德)의 도수(度數)요, 조화(調和)니라.』하시니라.

20.『도인(道人)기르는 법(法)이 강원도(江原道) 지방(地方)에서 삼농사(農事) 짓는 법(法)과 같으니라. 농부(農夫)가 가을에 삼종자(種子)를 파종(播種)하고 퇴비(堆肥)를 덮어 월동(越冬)시키면 얕게 묻힌 종자(種子)는 초춘(初春)에 태양기(太陽氣)를 미리 받아 먼저 싹이 드문 드문나서 다복솔과 같이  가지가 무성(茂盛)하게 되느니라.
주인(主人)이 때가 되어 불을 놓아 퇴비(堆肥)를 태우면 먼저 나서 출중(出衆)하던 삼은 모두 타 죽느니라. 그러나 알맞게 묻혔던 종자(種子)는 그때에 싹이 일제(一齊)히 트고 덮힌 재를 비료(肥料)로 하여 일취월장(日就月將) 가지없이 자라서 주인(主人)의 진실(眞實)한 물품(物品)이 되느니라.』하시니라.

21. 이달 초(初)삼일(日) 하지절(夏至節)을 당(當)하여 절후치성(節候致誠) 후(後) 도장영선공사(道場營繕工事)에 공(功)이 많은 도인(道人)을 유공순위(有功順位)로 공표(公表)하시니 이런 일은 처음 하신 일이니라.

22. 상제(上帝)께서 논공(論功) 후(後)에 하명(下命)하시기를『도(道)의 임원체계(任員體系)가 지우금(至于今) 포덕(布德)에 종사(從事)하는 포감(布監), 선도사(宣導師), 선도원(宣導員)의 단원제(單院制)이었으나 이제부터는 양원제(兩院制)로 개편(改編)하노라.
그 하나는 포덕(布德)을 전담(專擔)하는 포덕원(布德院)이고 또 하나는 교화(敎化)를 전담(專擔)하는 교화원(敎化院)이니라.
포덕원(布德院)에는 종전대로 포감(布監), 선도사(宣道師), 선도원(先導員)을 두고 교화원(敎化院)에는 새로운 직책(職責)인 순찰(巡察), 순찰보(巡察補), 순무(巡務), 순무보(巡務補)를 두노라.』하시고 이를 또 중부(中部)와 지방(地方)으로 구분(區分)하여 재임명(再任命)하시니 그중 상급임원(上級任員)은 다음과 같으니라.

지방임원(地方任員)
중산방면(中山方面) 포감(布監) 이용직(李龍稙)
충주방면(忠州方面) 포감(布監) 박한경(朴漢慶)
괴산방면(槐山方面) 포감(布監) 유철규(柳喆珪)
청주방면(淸州方面) 포감(布監) 임규오(林奎五)
영주방면(榮州方面) 포감(布監) 김명구(金命求)
김천방면(金泉方面) 포감(布監) 김용화(金容和)
연풍방면(延豊方面) 포감(布監) 김사학(金思學)

중부임원(中部任員)
충주방면(忠州方面) 선도사(宣導師) 이경수(李京洙) 순찰(巡察) 이윤섭(李允燮)
괴산방면(槐山方面) 선도사(宣導師) 오치국(吳治國) 순찰보(巡察補) 신상철(申祥澈)
중산방면(中山方面) 선도사(宣導師) 박덕구(朴德九) 순찰보(巡察補) 박중하(朴重夏)
(중산(中山), 청주(淸州), 영주(榮州), 김천(金泉), 연풍(延豊), 연립방면(聯立方面))
청주방면(淸州方面) 선도사(宣導師) 홍수암(洪壽岩)
김천방면(金泉方面) 선도사(宣導師) 이건우(李建雨)
연풍방면(延豊方面) 선도사(宣導師) 정종탁(鄭鍾卓)

23. 이달 유시를 모신  임원(任員)들이 상제께 다음과 같은 복고문을 올리니라.

『유시문(諭示文)
 왈이군공(曰爾群工)은 경수내직(敬受乃職)야 엄이존성(嚴而存誠)하라.
 양양상제(洋洋上帝)이 재상(在上)하시고 명명대도(明明大道)ㅣ 당진(當進)하니
 기감혹태(豈敢或怠)아 일진공업(日進工業)으로 달호청화(達乎淸和) 오만년(萬年)
 용화선경(龍華仙境) 건설지공(建設之功)을 기흠명호(其欽銘乎)ㅣ저

이르노니 너희 모든 공부하는 도인들은 공경스럽게 이 직책을 받아 엄히 하여 정성을 가지라.
넓고 넓으신 상제님께서 위에 계시고 밝고 밝은 대도가 진행하고 있으니 어찌 감히 태만할 수 있으랴.
날마다 진행하는 공부와 업무로 청화한 오만년 용화선경을 건설하는 공을 달성 하기에 공경하고 명심하라.』


24. 이날 유시(諭示)를 모신 任員들이 상제(上帝)님 다음과 같은 복고문(伏告文)을 올리니라.

『복고문(伏告文)
 복이태서유상(伏以太序有常) 일길신량(日吉辰良) 도문소자(道門小子) 모등 (某等) 복고우(伏   告于)
 구천응원 뇌성보화 천존 강성상제(九天應元 雷聲普化 天尊 姜聖上帝) 지신지성 성령지위    (至神至聖 聖靈至位)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 태극도주 조정산(无極神 大道德 奉天命 奉神敎 太極道主 趙   鼎山) 지신지성 성령지하 (至神至聖 聖靈之下)
 도문소자(道門小子) 모등(某等) 외몽중직(猥蒙重職) 성황성공(誠惶誠恐) 전전 긍긍(戰戰兢    兢) 복유이몽우악지흥은(伏惟以蒙又渥之鴻恩) 기달호청화오만년(期達乎淸和五萬年)용화선    경건설지공(龍華仙境建設之功) 시심시명(是心是銘)

저희 도문소자들이 회람되게 중한 직책을 받들었사오니 진실로 황공하여 두렵고 조심스럽나이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넓고 두텁고 크신 은혜를 입어 기오코 청화 오만년의 용화 선경을 건설하는 공을 달성하기로 이 마음에 새겼나이다.』

25. 복고문(伏告文)을 받으시고 다시 하명(下命)하시기를『그대들이 근자(近者)에 연원(淵源)  이니 연운(淵運)이니 하여 내 도인(道人), 네 도인(道人) 혹은 내 방면(方面), 네 방면(方面)으로 구별(區別)을 짓고 사당(私黨)을 만들어 도랑을 치는 폐단(弊端)이 적지 않으며 도인(道人)임을 사도인화(私道人化)하는데 연원(淵源)도 방면(方面)도 모두 도주(道主)에게서 나오느니 사당(私黨)은 사당 (死黨)이고 사도인(私道人)은 사도인(死道人)임을 명심(銘心)할지니라.』
그러므로 임원(任員)들 각자(各自)가 스스로 혁신(革新)하고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야 하므로 내 이제 혁신도수(革新度數)를 보리니 그대들은 혁신서문(革新誓文)을 지어 올리라.』하시므로 모든 임원(任員)이 다음과 같이 지어 올리고 이를 전(全) 도인(道人)에게 공포(公布)하여 봉행(奉行)을 독려(督勵)하니라.

『혁신서문(革新誓文)
저희들은 성 경 신(誠 敬 信)을 근본으로 하며 지존(至尊)의 덕화(德化)를 봉승(奉承)하여 왔사오나 저희들의 무지몰각(無知沒覺)한 소위(所爲)로 존의(尊意)를  올바로 받들지 못하고 도(道)와 진리(眞理)를 곡해(曲解)하와 사회단체(社會團體)에 불과(不過)한 파별적(派別的)인 행동(行動)을 범(犯)하였음을 황공무지(惶恐無地)이오며 불급지탄(不及之嘆)을 억제(抑制)할 수 없나이다. 금반(今般) 혁신도수(革新度數)를 기(期)하여 과거(過去)의 일체행위(一切行爲)를 반성회개(反省悔改) 하옵고 성(誠) 경(敬) 신(信)을 근본(根本)으로 하여 삼망(忘) 오기( 忌)를 봉행(奉行)하며 지존(至尊)의 덕화(德化)를 받들어 참다운 도인(道人)이 되기를 맹서(盟誓)하나이다.』

26. 혁신서문(革新誓文)을 받으시고 하교(下敎)하시기를『주역(周易)에 "정도(井道)는 불가불혁(不可不革)이요, 혁물자(革物者)는 막약정(莫若鼎)이라." 하고 또 "혁(革)은 거고야(去故也)ㅣ요, 정(鼎)은 취신(取新)이니라." 하였으니 이는 나의 일임 을 너희는 깨달아야 하느니라.』하시니라.

27. 이날 밤에 상제(上帝)께서 평일(平日)과 같이 철야(徹夜) 공부(工夫)하시다가 십일시경(時頃)에 시위당번(侍衛) 반장(班長) 오득표(吳得杓)와 반원(班員) 강맹달(姜孟達), 신순근(申淳根) 등(等)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내가 잠시(暫時) 쉬려 하니 새벽 한시(일(一時) 오분전(分前)에 깨우라.』하시니라.
한시가 되었을 때 득표(得杓)는 자고 맹달(孟達)과 순근(淳根) 등(等)은 서로 도담(道談)에 골몰(汨沒)하고 있으므로 중하(重夏)가 존전(尊前)에 나아가 시간(時間)이 되었음을 아뢰니『어찌 이제서야 깨우느냐? 벌써 한시(一時)가 아니냐?
비록 일분(分) 일초(初間)이라도 천개어자(天開於子)가 지벽어축(地闢於丑)이 되는 시간(時間)이어늘 천지(天地)는 분초간(分秒間)이라도 천지어자(天地於子) 지벽어축(地闢於丑)이 되는 시간이어늘 천지는 분초간(分秒間)도 쉬지 않음을 명심(銘心)하라.』엄책(嚴責)하시며 득표(得杓)에게 대기명령(待機命令)을 내리시니라.

28. 다음날 상오(上午)에 충주지방(忠州地方) 내수(內修) 오명순(吳明順)이 승안(承顔)을 모시고 내려가려 하니 『도장(道場)에서 점심(點心)을 먹고 가라.』하셨으나 황감(惶感)한 생각에서 먹지 않고 이웃의 친지(親知)집으로 내려가니라.
상제(上帝)께서 아시고『내 밥을 먹어야 내 일을 할 수 있는 법(法)이어늘 하물며 비록 사소(些少)한 일이라고 위명(違命)할 수 있느냐?』하시며 중하(重夏)로 하여금 불러다가 부복(俯伏)시키고 엄책(嚴責)하게 하시니라.

29. 상제(上帝)께서 도장(道場) 장원(牆垣) 위에 뱀이 지나감을 보시고 임원(任員)들에게 말씀 하시기를『저 형상(形狀)을 평(評)하여 보라.』하시므로 영국이『벽상와사(壁上臥蛇)는 일자생(一字生)이니이다.』하고 아뢰니『옳게 생각하였도다. 만일(萬一) 달리 생각 하였다면 큰 일이니 네가 오늘 일로 인(因)하여 덕(德)을 보리라.』하시니라.

30. 또 말씀하시기를『집안이 가장 조용한 자(字)는 아들 자(子)자고, 가장 시끄러운 자는 아내 처자(妻字)며, 세상(世上)에서 가장 높은 자는 지아비 부(夫) 자고, 가장 낮은 자는 다만 지자(只字)니라.』하시니라.

31.『의뢰심(依賴心)을 갖는 자는 망(亡)하느니 의뢰(依賴)하지 말라.』하시니라.

32.『너희가 힘껏 하여도 모자람은 내가 용납(容納)하되 넘침은 내가 쓰지 않으리라.』하시니라.

33. 이달 초(初)구일(日) 조회(朝會) 후(後)에 말씀하시기를『나의 일은 범질(范質)의 도수(度數)로 되느니라.』하시고 통감 제(苐)십오★권을 가져오게 하셔서 규오(奎五)에게 주시며 임원(任員)들과 함께 영대(靈臺)에 배례(拜禮)를 올리게 하신 다음 후주(後周) 공제(恭帝) 선우송(禪于宋)의 항목(項目)을 큰 소리로 정중(鄭重)히 독송(讀誦)하게 하시니라.
규오(奎五)가 필독(畢讀)한 후(後)에 하교(下敎)하시기를『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을 황제위(皇帝位)에 등극(登極)하게 한 사람은 범질(范質)이니라.
당시(當時)의 비결(秘訣)에 "점검 가외(點檢 可畏)"라고 전(傳)하여 왔는데 이 통감(痛鑑)에도 있듯이 송태조(宋太祖)의  등극전(登極前)의 직위(職位)가 전전도점검(殿前都點檢)이었으므로 비결(秘訣)과 일치(一致)하였느니라.
이때 범질(范質)이 재상(宰相)으로서 문무백관(文武百官)을 거느리고 공제(恭帝)에게 예궐(예궐)하여 재가(裁可)를 내리게 하고 송태조(宋太祖)를 부액(扶腋)하여 전상(殿上) 용상(龍床)에 오르게 하니 이로써 송(宋)나라가 세워졌는바 이 곧 범질(范質)의 도수(度數)니라.
너희들이 오늘 좋은 글을 배웠으니 내게 예(禮)하라.』하시므로 사배(拜)를 올리니라.

34. 이달 중순(中旬)에 상제(上帝)께서 백일공부(百日工夫)를 마치시고 임원(任員)들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 『그대들이 지난 번(番)에 나를 지존위(至尊位)에 오르라 함이 도수(度數)를 알고 한 일은 아니나 이 또한 천기(天機)니라.
이로써 이곳 도수(度數)를 마쳤으니 천장길방(天藏吉方)인 길지(吉地)를 찾아 도강이서(渡江 而西)하여 정착할 대이동도수(大移動度數)와 상제(上帝)님께서 정(定)하신 대학도수(大學度數)가 돌아오느니라.
운수(運數)는 좋으나 고난(苦難)이 많으리니 그대들이 감내(堪耐)할지 걱정이로다.』하시니라.

35. 다음날 상오(上午)에 상제(上帝)께서 임원(任員) 몇 사람을 거느리시고 감천(甘川) 용담 (龍潭)해수욕장에 행행(行幸)하셔서 한 나절을 소요(逍遙)하시며 산천지세(山川地勢)를 두루 살피시니라. 이를 전후(前後)하여 수차(數次) 중하(重夏)와 봉상(奉祥)에게『감천(甘川)의 토지시세(土地時勢)를 알아오라.』하시므로 그들은 토지(土地)를 사서 무엇하시려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며 그 곳에 사는 위출(渭出)과 함께 하감천(下甘川) 일대(一帶)의 땅값을 알아보니 밭 한 평(坪)에 사,오백원(百圓)이므로 그대로 아뢰니라.
본래(本來) 감천(甘川)은 그 고개 반월령(半月嶺)에 도장(道丈) 산소(山所)를 모신 곳이므로 상제(上帝)께서 성묘시(省墓時)에는 임원(任員)들을 거느리고 임어(臨御)하셔서 자주 지형(地形)지세(地勢)를 감(鑑)하신 곳이니라.

36.  칠월(月) 초(初)칠일(日)에 국회(國會) 부의장(副議長) 조경규(趙瓊奎)가 시내(市內) 각급기관장(各級機關長) 등(等) 수행원(隨行員)과 경호원(警護員)을 거느리고 부산도장(釜山道場)으로 상제(上帝)를 예방(禮訪)하니라. 그는 상제(上帝)와 족친간(族親間)이었으나 이날은 사적친분(私的親分)보다 공적(公的)으로 도인(道人)들의 판옥철거문제(板屋撤去問題)를 상의(相議)하러 오니라.
그가 상제(上帝)께 고(告)하기를『부산(釜山)은 본래(本來) 우리 나라 제일(第一)의 항구도시(港口都市)로서 외국인(外國人)의 출입(出入)이 잦고 또 미관(美觀) 화재문제(火災問題) 등(等)의 도시정비상(都市整備上) 제반사정(諸般事情)으로 판옥(板屋)은 철거(撤去)하여야 함이 정부(政府)의 방침(方針)이옵니다.
그러나 천여호(天餘戶)나 되는 도인(道人)들을 다른 난민(難民)과 같이 강제(强制) 철거(撤去)할 처지(處地)가 아니므로 도지사(道知事)나 시장(市長)이 오기보다는 소임(所任)은 아니오나 제가 사전(事前)에 진달(進達)함이 도리(道理)인 줄 알고 왔사오니 하념(下念)하시옵기 바라옵니다.』하고 철거(撤去)와 이주방법(移住方法)은 도중(道中) 임원(任員)과 관계당국(關係當局)이 협의(協議)하여 시행(施行)하시도록 여쭈니라.

37. 상제(上帝)께서는 도인(道人)들의 대이동(大移動)을 이미 도수(度數)로서 심정(心定)하시고 임원(任員)들에게 하시(下示)하신 바이나 현실여건(現實與件)이 염려(念慮)되셔서 도중(道中)에 공포(公布)하지 않으셨는데 이 때 조부의장(趙副議長)의 상고(上告)를 접(接)하셔서 자동적(自動的)으로 시행(施行)하게 된 구천(九天)의 도수(度數)에 새삼 감열(感咽)하시고 흔쾌(欣然)히 윤허(允許)시니라.

38. 이날 밤에 상제(上帝)께서 중부임원(中部任員)들을 긴급(緊急)히 부르셔서 하명(下命)하시기를『내가 도인(道人)들의 대이동도수(大移動度數)를 수월전(數月前)에 심정(心定)하였으나 너희들의 난감(難堪)한 형실(形實)을 염려(念慮)하여 아직 명령(命令)을 내리지 못하였더니 오늘 조부의장(趙副議長)과 협의(協議) 한 결과(結果) 도인(道人)들의 판옥(板屋)을 철거 (撤去) 이주(移住)하기로 하였느니라.
이를 좋게 받아 들여 시행(施行)하는 것이 옳으니 임원(任員)들은 이 사실(事實)을 중부(中部) 전(全) 도인(道人)에게 주지(周知)시켜 만반(萬般)으로 준비(準備)하되 이것이 구천(九天)의 도수(度數)임을 명심(銘心)하고 여하(如何)한 난관(難關)도 극복(克服)할 태세(態勢)를 확립(確立)하도록 하라.
또한 중하(重夏)와 봉상(奉祥)은 이에 따른 당국(當局)과의 협의(協議)를 추진(推進)하되 도인(道人)에게 도움이 되도록 유념하여 노력하라.』하시니라.

39. 중하(重夏) 등(等)이 당국(當局)과 협의(協議)하면서 제일(第一) 중대(重大)한 난제(難題)는 이주지(移住地)니 천여호(天與戶)가 당장(當場) 이주(移住)함에는 당국(當局)이 도로(道路), 전기(電氣) 등(等) 부대시설(附帶施設)의 보조(補助)는 재정상(財政上) 불가능(不可能) 하다 하여도 최소한(最小限) 몇 만평(萬坪)의 부지(敷地)는 주선(周旋)하여야할 것이어늘 이를 불응(不應)하니라.
당국(當局)이 겨우 이주지(移住地)로 예정(豫定)한 영도(影島) 청학동(靑鶴洞)은 택지조성(宅地造成) 조차 할 수 없고 그 토지(土地)가 거의 사유지(私有地)이므로 자담매입(自擔買入)하여야 할 난감(難堪)한 사정(事情)이니라.

40. 중하(重夏) 등(等)이 저간(這間) 사정(事情)을 상제(上帝)께 복명(復命)하니 말씀하시길『지난 번(番) 너희에게 감천(甘川)의 토지시세(土地時勢)를 알아 보라 하였으나 건성으로 하여 이제 다급(多級)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러나 영도(影島)는 실(實)이 아닌 허(虛)의 그림자라는 뜻이고 또 절영도(絶影島)이므로 불가(不可)하고 이주(移住)할 곳은 감천(甘川)이라야 하느니 그곳이 천장길방(天藏吉方)이니라. 감천(甘川)을 감내라 하니,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고 고진(苦盡)이면 감래(甘來)가 바로 이곳이며 새서울이 이곳이니라.
감천(甘川)에서도 해변(海邊)이 아닌 도장(道丈) 산소(山所)를 모신 반월령(半月嶺)으로부터 천마산(天馬山)과 옥녀봉(玉女峯)의 두 산록(山麓)이 서로 맞닿은 동구(洞口)까지의 천마옥녀(天馬玉女) 음양합덕지궁(陰陽合德之宮)이라 야 도수(度數)의 땅이 되느니라.
너희는 이를 명심(銘心)하고 당국(當局)과 협의(協議)하되 이 또한 천기(天機)니 누설(漏洩)하지 말라.』하시니라.

41. 중하(重夏) 등(等)은 수일간(數日間) 당국(當局)과 협의(協議)하여도 너무 막막(寞寞)하여 갈피를 못잡더니 이 명령(命令)을 모시고는 의기헌앙(意氣軒昻) 협의(協議)한 결과(結果) 이주지(移住地)를 하명(下命)대로 정(定)하고 철거(撤去) 개시일(開始日)은 칠월(月) 십구일(日)로 하니라. 당국(當局)은 철거기간중(撤去期間中) 임시(臨時)로 지주(止住)할 천막(天幕) 오십장(張)을 지원(支援)함과 동시(同時)에 철거자재(撤去資材)를 비롯하여 가재도구(家材道具)와 구들장까지 무상수송(無償輸送)하여 주기로 하니라.

42. 상제(上帝)께서 이 보고(報告)를 받으시고 금품(金品)을 하사(下賜)하셔서 이주예정지역(移住豫定地域)의 사유지(私有地)는 매입(買入)하고 경작자(耕作者)가 있는 국유전답(國有田畓)은 권리금(權利金)을 주어 양수(讓受) 하도록 하시니라.
또 이주업무(移住業務)를 담당(擔當) 처리(處理)할 대책위원회(大策委員會)를 조직(組織)하게 하셔서 위원장(委員長)에 박중하(朴重夏), 위원(委員)에 신상철(申祥徹), 윤금현(尹金鉉), 김중태(金重泰) 등을 명(命)하시니라.
위원회(委員會)는 사무실(事務室)을 반월령(半月嶺)에 설치(設置)하고 위원장(委員長)을 중심(中心)으로 전(全) 위원(委員)과 각(各) 방면(方面) 임원(任員)들이 일치단결(一致團結)하여 우선(于先) 대상순위결정(對象順位決定), 대지구획배정(大地區劃配定) , 정지작업(整地作業) 등(等) 각종(各種) 업무(業務)를 분장당무(分掌當務)하니라.

43. 이주지(移住地)로 결정(決定)된 감천동(甘川洞)은 본시(本是) 구덕산(九德山)의 연맥(連脈)이 그 최남단(崔南端)을 이루는 천마산(天馬山)으로 내닫다가 대치(大峙)를 지나면서 아미산(峨嵋山)이 융기(隆起)하여 서남방(西南方)의 옥녀봉(玉女峯)에 이르는 몇 개(個)의 산봉(山峰)이 괴정동(槐亭洞)과의 경계(境界)를 이루고 다시 아미산(峨嵋山)이 아미동(峨嵋洞)과의 경계(境界)를 이루는 반월령(半月嶺)을 지나 천마산(天馬山)까지 이어지면서 아미(峨嵋) , 천마(天馬), 옥녀(玉女) 삼봉(峯) 사이에 깊고 큰 동학(洞壑)을 이룬 곳이니라.
남(南)으로는 감천만(甘川灣)의 용담(龍潭)에 임(臨)하고, 서(西)는 옥녀봉(玉女峯), 동(東)은 천마산(天馬山), 북(北)은 반월령(半月嶺)이 병립(屛立)하였으며 동학(洞壑) 중간(中間)에는 감천수(甘川水)가 용담(龍潭)으로 흐르고 그 좌우(左右)가 완만(緩慢)한 경사지(傾斜地)이며 동구부근(洞口附近)에 삼십여호(餘戶)의 원주민촌(原住民村)과 그들의 전답(田畓)이 있고 그 외(外)에는 거의 황무지(荒蕪地)와 덤불과 수풀이니라.

44. 상제(上帝)께서 감천(甘川) 전역(全域)을 구개지역(個地域)으로 구획(區劃)하셔서 반월령(半月嶺)에서 옥녀봉(玉女峯) 방향(方向)으로 일감(甘), 이감(甘), 삼감(甘), 사감(甘) 중앙지역(中央地域)을 오감(甘), 다시 그 남단(南端)에서 천마산(天馬山) 산록(山麓)을 따라 북향(北向)으로 육감(甘), 칠감(甘), 팔감(甘), 구감(甘)의 명칭(名稱)을 붙이시니라.
각(各) 방면(方面)의 이주지(移住地)를 구역별(區域別)로 지정(指定)하셔서 일감은 충주방면(忠州方面), 이감(甘)은 김천(金泉), 삼감(甘)은 청안(淸安), 사감(甘)은 괴산(槐山), 오감(甘)은 중산(中山)과 영주(榮州), 육감(甘)은 괴산(槐山), 칠감(甘)은 청주(淸州), 팔감(甘)은 충주(忠州), 구감(甘)은 연풍(延豊) 등(等) 방면별(方面別) 도가집단지역(道家集團地域)이 구궁(宮) 구곡(曲)의 상태(狀態)를 형성(形成)하게 하시니라.

45. 이주사업(移住事業)이 시작(始作)되자 전(全) 도인(道人)이 총동원(總動員)하여 대책위원회(對策委員會)의 지도하(指導下)에 일부는 일감(甘)으로부터 대지(垈地)를 조성(造成)하고 일부(部)는 보수동(寶水洞) 판옥(板屋)을 철거(撤去)하며 일부(部)는 감천동(甘川洞)에 판옥 (板屋)또는 토옥(土屋)을 축조(築造)하니라.

46. 이때 중부도가(中部道家)의 생활(生活)은 일용(日傭)과 행상(行商) 등(等)이 대부분(大部分)이고 안정직(安定職)을 가진 도인(道人)은 극소수(極少數)로서 피난(避難)생활을 겨우 면한 상태(狀態)이고 다만 안심(安心), 안신(安身)을 신조(信條)로 한 신앙생활(信仰生活)을 정려(精勵)할 뿐이니라.
이러한 상태(狀態)에서 판옥(板屋)일망정 타의(他意)에 의(依)하여 철거(撤去) 이주(移住)하는데 당국(當局)의 협조(協助)는 겨우 수송(輸送)에 그치고 건축(建築)과 생계(生計)는 자담(自擔)하니라.
이로 인(因)하여 일용(日傭)이나 행상(行商)도 할 수 없어 당장(當場) 생계(生計)에 위협(威脅)을 받을 뿐더러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일기(日氣)조차 불순(不順)하여 작업(作業)이 부진(不振)하여 근근(僅僅)히 완성(完成)되어가던 판옥(板屋) 토옥(土屋)이 빈번(頻煩)한 폭풍(暴風)과 ★임우(임雨)로 파괴(破壞)되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니 도인(道人)들의 참상(慘狀)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으나 오직 상제(上帝)의 훈교(訓敎)와 도심(道心)으로 이주업무(移住業務)를 계획(計劃)대로 추진(推進)하니라.

47. 상제(上帝)께서는 불피풍우(不避風雨)하시고 보수동(寶水洞)과 감천동(甘川洞) 현장(現場)에 매일(每日) 들르셔서『이 곧 칠년대한(七年大旱)과 팔년풍진(八年風塵), 구년홍수(九年 洪水)의 도수(度數)니라.』하시며 도인(道人)들의 고난(苦難)을 체인(體認)하시고 격려(激勵)하시며 임원(任員)들에게 최선(最善)을 다하여 지원(支援)하도록 하시니라.
또 포덕(布德)과 교화(敎化)에도 소홀(疎忽)함이 없도록 하시고 수시(隋時)로 금품(金品)과 자재(資材)를 하사(下賜) 구휼(救恤)하시므로써 이해 십월(月) 말경(末頃)에 팔백호(百戶) 가량(仮量)이 이주(移住) 정착(定着)하니 말씀하시기를『이 오강록도수(烏江錄度數)며 도강이서도수(渡江而西度數)니라.』하시니라.

48. 1955년 팔월(月) 초(初)에 상제(上帝)께서 대책위원회(對策委員會) 사무실(事務室) 옆에 싸전(廛)을 내어 위원회(委員會)의 직영(直營)으로 도매상(都賣商)에서 양곡(糧穀)을 받아 도인(道人)들의 실정(實情)에 맞도록 공급(供給)하게 하시니라.
이 결과(結果) 도인(道人)들에게 돌아오는 혜택(惠澤)이 막대(莫大)하여 십월(月)에는 오감지대(甘地帶)에도 싸전(廛)을 내게 하시고 그 책임자(責任者)에 포감(布監) 김용화(金容和), 보조원(補助員)에는 권형진(權炯鎭), 김중태(金重泰), 김동윤(金東允) 등(等)을 임명(任命)하시니라. 그 규모(規模)가 더욱 커지자 익년(翌年) 춘(春)에는 시내(市內) 충무로(忠武路) 삼가(街속칭 자갈치 시장)에 부산(釜山) 굴지(屈指)의 양곡위탁판매(糧穀委託販賣) 업체(業體)인 협동상회(協同商會)와 감만동(戡蠻洞) 소재(所在) 대규모(大規模) 도정업체(搗精業體)인 대원산업주식회사(大原産業株式會社)를 인수(引受)하여 경영(經營)하게 하시니라.

49. 이달 중순(中旬)에 ★경규(奎)가 상제(上帝)께 전편서신(專便書信)으로 왜정시(倭政時)에 만주(滿洲)에서 활약(活躍)하신 독립운동(獨立運動)에 대(對)한 서훈신청(敍勳申請)과 안면도(安眠島)와 원산도(元山島)에 간척(干拓)하신 농지(農地)에 대(對)해 환수책(還收策)을 사뢰니 단호(斷乎)히 거절(拒絶)하시고 다시는 거론(擧論)조차 못하게 하시니라.

50. 감천동(甘川洞) 오감지역(甘地域)은 지번(地番)이 산(山) 백(百)오번지(番地)였으므로 원주민(原住民)이 주소(住所)로 사용(使用)함에 따라 도인(道人)들의 주소(住所)도 모두 백(百)오번지(番地)가 되니라.
상제(上帝)께서 말씀하시기를『선천(先天)에는 천상(天上)에 백(百)팔천(天)이 있음을 불가(佛家)에서 본(本)따 백(百)팔염주(念珠)를 써왔으나 후천(後天)에는 백(百)오천(天)이 되니 금강산(金剛山) 유점사(楡岾寺)의 보리수(菩提樹)도 그 열매가 예전에는 백(百)팔개씩(個式) 열리다가 근년(近年)에는 백(百)오개씩(個式) 열리느니라.
이곳의 지번(地番)이 백(百)오번지(番地)며 도인(道人)들이 모두 이 번지(番地)를 사용(使用)함은 삼계(三界)의 후천도수(後天度數)에 상응(相應)함이니라.』하시니라.

51. 또 말씀하시기를『주회암(朱晦庵)의 무이구곡(武夷九曲)과 송우암(宋尤庵)의 화양구곡(華陽九曲)이 좋다 한들 어찌 나의 감천구곡(甘川九曲)만 하랴.
내가 초패왕(楚覇王) 강동자제(江東子弟) 팔천인(千人)의 해원도수(解寃度數)로 이제 팔백호(百戶)의 천장길방(天藏吉方)을 여는 공사(公事)를 마쳤으니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짜놓으신 오강록도수(烏江錄度數)에 맞느니라. 상제(上帝)께서 일찍이 허령부(虛靈符)로서 태인도장, 지각부(知覺符)로서 회문도장(會文道場)을 점지(占之)하신 허령도수(虛靈度數)와 잠룡지각도수(潛龍知覺度數)의 공사(公事)를 마쳤으니 이제는 그대들이 현무경(玄武經)의 신명부(神明符)를 보라. 무이구곡(武夷九曲)을 좌서(左書)하신 이 길방(吉方) 명당(明堂) 보화성역(普化聖域) 청학동(靑鶴洞)에 너희들이 살게 되었으니 다시 천은(天恩)에 사은숙배(謝恩肅拜) 올려야 할지니라.』하시니라.

52. 또『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고생(苦生)하나 도통(道通)은 고사(姑捨)하고 광제(廣濟)에 참예(參詣)하여 도인(道人)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만승천자(萬乘天子)가 눈 아래로 내려다 보일 날이 있으리라.』하시니라.

53.『성(誠)이란 내가 필요(必要)할 때는 너희들이 나에게 아낌 없이 주어야 하 는 것이니 내가 성공(成功)한 후(後)에는 삼계(三界)가 모두 내 것이므로 필요(必要)하지 않으리라. 』하시니라.

54. 이무렵 도인(道人)들이 너무나 간절(懇切)히 때를 기다리므로 상제(上帝)께서 효유(曉諭)하시기를『너희들이 함안(咸安)가면 극락(極樂)에 다 가느니라.
나의 일은 너희들을 안심(安心), 안신(安身)하게 하여 천하창생(天下蒼生)을 모두 평안(平安)하게 하기 위(爲)한 공사(公事)임이니라.』하시니라.

55. 상제(上帝)께서 도인(道人)들이 각(各) 방면(方面) 집단별(集團別)로 회의(會議), 교화(敎化), 기도(祈禱), 수련(修鍊)에 소용(所用)될 회의실(會議室)을 짓도록 하시니 각(各) 방면(方面)에서는 십여평(餘坪) 내지(乃至) 삼사십평(坪) 등(等) 그 호수(戶數) 에 맞는 규모(規模)로 총(總)이십사개소(個所)에 회의실(會議室)을 지으니라.

56. 회의실(會議室)이 완성(完成)되자 상제(上帝)께서 주일기도(主日祈禱)는 반드시 각(各) 방면별(方面別)로 회의실(會議室)에서 합동(合同)으로 모시게 하시니라.
또 오감(甘) 중앙지역(中央地域)에 종(鍾)을 달아 그 종성(鐘聲)으로 기도시간(祈禱時間)을 알리도록 하시더니 정유년(丁酉年)에는 그 종(鍾)을 대강전(大降殿) 옆으로 이설(移說)하게 하시니라. 상제(上帝)께서 화천(化天) 후(後)에 유의(有意)를 받들어 더 크게 주조(鑄造)하여 도장내(道場內)에 종각(鐘閣)을 건립(建立)하고 대고(大鼓)과 함께 설치(設置)하니라.


제 6 장-2

 

 

 

57. 이때 상제(上帝)께서 무이구곡시(武夷九曲時)를 하교(下敎)하시며 중하(重夏)와 금현(金鉉)으로 하여금 도인(道人)들에게 가르쳐 외게 하시니 각(各) 방면(方面) 도인(道人)들이 회의실(會議室)에 모여 구곡시(九曲詩)를 외는 소리가 감천(甘川) 전역(全域)에 울려 퍼지니라.

『무이구곡시(武夷九曲詩)
무이산상유선령(武夷山上有仙靈)
산하한류곡곡청(山下寒流曲曲淸)
욕식개중기절처(欲識個中奇絶處)
도가한청양삼성(櫂歌閑聽兩三聲)

일곡계변상조선(一曲溪邊上釣船)
만정봉영잠청천(만亭峰影잠晴川)★
홍교일단무소식(虹橋一斷無消息)
만학천암쇄취연(萬壑千岩鎖翠煙)

이곡정정옥녀봉(二曲亭亭玉女峰)
삽화임수위수용(揷花臨水爲誰容)
도인불부황대몽(道人不復荒臺夢)
흥입전산취기중(興入前山翠幾重)

삼곡군간가학선(三曲君看架壑船)
부지정도기하년(不知停櫂幾何年)
상전해수금여허(桑田海水今如許)
포말풍등감자련(泡沫風燈堪自憐)

사곡동서양석암(四曲東西兩石岩)
암화수로벽람삼(岩花垂露碧람毿)★
금계규파무인견(金溪叫罷無人見)
월만공산수만담(月滿空山水滿潭)

오곡산고운기심(五曲山高雲氣深)
장시연우암평림(長時煙雨暗平林)
임간유객무인식(林間有客無人識)
애내성중만고심(애乃聲中萬古心)

육곡창병요벽만(六曲蒼屛繞碧灣)
모자종일엄시관(茅茨終日掩柴關)
객래의도암화락(客來倚櫂岩花落)
원조불경춘의한(猿鳥不驚春意閑)

칠곡이선상벽탄(七曲移船上碧灘)
은병선장갱회간(隱屛仙掌更回看)
각련작야봉두우(却憐昨夜峰頭雨)
첨득비천기도한(添得飛泉幾度寒)

팔곡풍연세욕개(八曲風煙勢欲開)
고루암하수영회(鼓樓岩下水濚회
막언차처무가경(莫言此處無佳景)
자시유인불상래(自是遊人不上來)

구곡장궁안활연(九曲將窮眼豁然)
상마우로견평천(桑麻雨露見平川)
어랑갱멱도원로(漁郞更覓桃源路)
제시인간별유천(除是人間別有天)』

58. 1955년 십월(月) 초(初)에 상제(上帝)께서 정심경(定心經)을 내려주시며『이 글은 공부(工夫)에 좋은 글이니 많이 읽으라.』하시니 이러하니라.

『정심경(定心經)
천군태연(天君太然) 백체종영(百體從令)
원기포행(元氣布行) 이제칠성(以齊七政)
사상성도(四象成道) 만방함령(萬邦咸寧)
군신제회(君臣際會) 영대위경(靈臺緯經)
사덕정중(四德正中) 계계승승(繼繼承承)
선기운기(璇璣運機) 합벽위영(闔闢緯營)
개방석쇄(開榜釋鎖) 백운권공(白雲捲空)
날패착어(날패鑿禦) 금선화형(金蟬化形)
유즉호격(維卽互隔) 연천단궁(鍊擅丹宮)
익수연년(益壽延年) 화신장생(化身長生)
존보심신(存保心神) 대성일용(大聖日用)
사려미기(思慮未起) 귀신막량(鬼神莫量)
도덕광대(道德廣大) 한사존성(閑邪存誠)
심불재도(心不在道) 도재심공(道在心工)
불입오예(不入汚穢) 불육기궁(不戮其躬)
능사불선(能使不善) 불감침공(不敢侵功)
정신수호(精神守護) 심력기령(心力其靈)
만자생광(萬紫生光) 조화흥공(造化興工)

천군 즉 마음이 안정되어 태연하니 몸에 딸린 모든 군속(백체)이 영을 좇는 도다.
본원의 기운이 운행하여 이로써 7정(천지에서는 해와 달과 오행,사람에서는 귀와 눈과 5장)을 다스리는도다.
사상(노음,노양,소음,소양)이 도를 이루니 모든 나라가 모두 평안하도다.
임금과 신하가 모두 모인 영대가 원만하여 구김이 없도다.
사덕(천도는 원형이정, 인도는 인의예지)이 바르고 알맞으니 잇고 또 잇도다. 천지운행의 기틀을 운전하니 장막과 진영을 임의로 닫고 열고 하도다.
방을 열고 자물쇠를 푸니 흰구름이 공중에서 걷히도다.
쌀을 매갈이하고 찧거나 막힌 것을 뚫으매 금매미가 형상을 조화하도다.
들어가고 나아감에 서로 막힘을 마음 가운데(단전)에 연마하면 생명을 연장 하여 오래 살리라.
마음과 정신을 보존함은 대성인께서 날마다 사용하심이라.
생각과 염려를 일으키지 않으면 귀신도 헤아리지 못하리라.
도덕이 넓고 크다 하나 바르지 않음을 멀리하고 정성을 보존함 뿐이로다.
마음에 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공부하는 가운데 도가 있도다.
더러운데 들어가지 않으면 그 몸을 죽이지 않으니 능히 선하지 못한 것으로 하여금 감히 침공하지 못하게 하라.
정신을 지키고 보호하면 마음의 힘이 신령하리라.
만가지 붉은 것이 빛은 내니 조화가 공을 일으키도다.

59. 이달 하순(下旬)에 상제(上帝)께서 대책위원(對策委員)들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도인(道人)들이 모두 감천(甘川)으로 이주(移住)한 후(後)에 나만 보수동(寶水洞)에 남아 있는 것이 도수(度數)에 맞지 않은지라, 내가 감천(甘川)으로 가리니 오감(甘)에 적당(適當)한 방(房) 한 간(間)을 마련하라.』하시므로 위원(委員)들이 상의(相議)한 다음 비록 판옥(板屋)이나 중하(重夏)의 집이 적합(適合)하여 거동시(擧動時)의 임시(臨時) 행재소(行在所)로 정(定)하여 드리니『이곳에서 장차 대학도수(大學度數)를 보게 되리라.』하시며 왈유정 관아재(曰有亭觀我齋)로 명명(命名)하시니라.

60. 도인(道人)들의 정착사업(定着事業)이 끝날 무렵 상제(上帝)께서 대책위원(對策委員)들의 공로(功勞)를 치하(致賀)하시고 위원장(委員長) 박중하(朴重夏)의 직위(職位)를 순찰보(巡察補)에서 순찰(巡察)로 승진(昇進)시키시니라.
또 중산방면(中山方面)의 지방순무(地方巡務) 권동흠(權東欽)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너의 방면(方面) 포감(布監)은 이제 연로(年老)하여 지방사업(地方事業)을 감당(堪當)할 수 없으니 중부(中部)로 올라와서 휴양(休養)하도록 하고 네가 그 직무(職務)를 대행(代行)하라.』하시니라.

61. 하루는 임원(任員)들이 사감(사감)에 있는 천덕사(天德寺)를 사서 도인(道人)들의 주택으 로 사용하고자 상제님께 여쭈니『천덕사가 있음은 감천이 도덕곡(道德谷) 또는 천덕동(天德洞)의 증거니 천덕사를 그대로 두도록 하라.
선천에서는 절터, 군사가 진을 쳤던 터, 신명을 모시는 집을 지었던 터에 집 을 짓고 살면 좋지 않으니라.』하시니라.

62. 이어 가르치시기를『유관장(劉關張)의 삼형제(兄弟)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함은 그 집이나 산천(山川)이 좋아서가 아니니라.
감천(甘川)에 사는 너희도 그러하니 지금(只今)은 비록 초려(草廬)도 못되는 판옥(板屋)에 유상팔백주(有桑八百株)는 커녕 일주(株)도 없이 고생(苦生)하고 있으나 어찌 초당춘수(草堂春睡)의 공명(孔明)에 비하랴.
그러므로 너희는 이곳의 험난(險難)한 지형(地形)과 빈번(頻煩)한 풍우(風雨)를 탓하지 말라.
불연(不然)이면 어찌 공동(空洞)으로서 천장길방(天藏吉方)한 도수지지(度數之地)가 되었으리요.』하시니라.

63. 하루는 상제(上帝)께서 판옥(板屋)의 부실(不實)을 염려(念慮)하는 도인(道人)들에게 하교(下敎)시기를 『하늘이 무너질까 겁(劫)내느냐? 땅이 꺼질까 두려워하느냐?
오직 네 마음과 몸이 무너지고 꺼짐을 겁(劫)내고 두려워하라.
이것이 안심(安心),안신(安身)의 요체(要諦)니라.』하시니라.

64. 또 하교(下敎)하시기를『옛날 강태공(姜太公)은 칠십이둔(遁)을 썼다 하나 그는 아는데 그쳤고 그 일부(一部) 밖에는 쓰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칠십이둔(遁) 뿐 아니라 음양둔(陰陽遁)을 더 쓰노라.』하시니라.

65. 또『이마두(利馬竇)는 중국(中國)에 와서 폐습(弊習)을 고치고 포부(匏部)를 펴려하였으되 이루지 못하고 다만 양력(陽曆)의 연월일시(年月日時)를 쓰게 하였으나 나는 음양력(陰陽靂)의 각분초(刻分秒)까지 다 쓰노라.』하시니라.

66.『예로부터 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에 해인(海印)이라는 보물(寶物)이 있어 이로써 산하(山河)를 좌우(左右)하며 천지를 개벽(開闢)한다는 전설(傳說)이 있고 일설(一說)에는 정만인(鄭萬人)이 해인(海印)을 훔쳐 해도로 들어가 장차(將次) 계룡산(鷄龍山)에 도읍(都邑)할 대사(大事)를 꾸미리라 전(傳)하나 이는 도시(都是) 허언(虛言)이니라. 다만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잘 믿는 사람에게 해인(海印)을 전(傳)하여 주리라." 하셨으니 해인(海印)이 있기는 하되 이는 본시(本是) 무극(無極)의 체(體)와 태극(太極)의 용(用)을 이름이니라.』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그 해인(해인(海印))이 누구에게 있는지 너희들이 아느냐?』하시니라.

67.『과거지사(過去之事)는 돌아보지도 말라. 흘러간 물을 움켜잡을 수 없음이 꿈과 환상(幻想)과 같으니라. 도인(道人)들은 오직 앞을 내다보고 일심수도(一心修道)하여 진경지인(眞境之人)이 되도록 할지어다.』하시니라.

68. 어느 임원(任員)이 관하도인(管下道人)의 장자(長子)가 요절(夭折)함을 보고 상제(上帝)께 여쭈기를 『그 도인(道人)이 입도이후(入道以後) 다른 사람에게 모범(模範)이 되리만큼 성심(誠心)껏 신앙(信仰)하였사온데 어찌 천리(天理)가 이렇게 가혹(苛酷)하나이까?
그의 죄(罪)이온지 죽은 아이의 죄(罪)이올지 가르쳐 주옵소서.』하니 이렇게 타이르시니라.
『참으로 안된 일이로다. 그러나 도시(都是) 천도(天道)의 운수(運數)니 죄(罪)를 논(論)하기에 앞서 먼저 부자(父子)로서의 인연(因緣)이 다하여 이루어진 참척(慘慼)이니 무가내(無可奈)니라. 다만 그 도인(道人)의 신심(信心)에 대한 시련(試練)임을 일깨워 그의 아픈 마음을 위안(慰安)하고 수행(修行)을 격려(激勵)하며 어린 혼백(魂魄)의 명복(冥福)을 빌어주라.』하시니라.

69. 십일월(月) 말경(末頃)에 상제(上帝)의 회갑일(回甲日)을 며칠 앞두고 가족(家族)과 임원(任員)들이 수연(壽宴)을 준비하려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으시니라.
임원(任員)들이 여러차례 올라가 간원(懇願)하니『수연(壽宴)이라 함은 선천(先天)에서 속인(俗人)들이 환갑(環甲)이니 한갑(恨甲)이니 하며  장수(長壽)를 축하(祝賀)함이나 도(道)에서는 도수(度數)에 맞지 않으니 중지(中止)하라.』하시니라.
임원(任員)들은 할 수 없이 내려와 상의(相議)한 다음 숭도부인(崇道夫人)을 모시고 올라가 간청(懇請)하기를『도수(度數)는 그러하오나 저희들로서는 이날을 그대로 넘길 수 없사오니 잔치는 중지(中止)하더라도 헌배(獻杯)나 하도록 윤허(允許)하옵소서.』하니『우리에게는 후천(後天)오만년(萬年) 선경세계(仙境世界)가 있으니 해원(解寃)하고 싶거든 더 말하지 말라.』하시며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니라.

70. 십이월(月) 초(初)삼일(日) 하오(下午)에 상제(上帝)께서 산정(山亭)에서 공부(工夫)하시는데 그 이웃에 사는 폭력배(暴力輩) 두목(頭目) 박모(朴某)가 만취(滿醉)되어 산정(山亭) 옆을 지나며 방자(放恣)한 태도로 공부실(工夫室) 지붕에 돌을 던지고 이를 나무라는 시봉(侍奉) 신상철(申祥澈)을 구타(毆打)하는 등(等) 행패(行悖)까지 하니라.
이를 본 청구(靑丘)가 방강(方剛)한 혈기(血氣)로 묵과(黙過)하지 못하고 쫒아가서 손으로 치니 단(單) 한 번(番)의 손길에 기절(氣絶)되니라. 임원(任員)들이 나가서 수습(收拾)하려고 소란한데 상제(上帝)께서 공부(工夫)를 마치시고 문(門)을 여셨다가 이 상황(狀況)을 보시고 조용하게 하신 다음『폭력(暴力)은 폭력(暴力)으로 벌(罰)을 받는 법(法)이니 빨리 깨닫고 깨어나라.』하시니 박모(朴某)가 고대 소생(甦生)하여 돌아가서 개과천선(改過遷善)하니라.

71 상제(上帝)께서 이날 저녁에 도장(道場)으로 하림(下臨)하셔서 청구(靑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사람을 죽일 줄 알면 살릴 줄도 알아야 하지 않으랴.』하시고 전(全) 가족(家族) 과 임원(任員)들에게『영래(永來)는 장차(將次) 쓰일 곳이 있으니 그 기(氣)를 꺾을 것은 없느니라. 』하시니라.

72. 초(初)사일(日) 아침에 가족(家族)과 임원(任員)들이 상제(上帝)께 수연상(壽宴床)을 올리니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상(床)이 수연상(壽宴床)이 아니라 보통(普通) 아침상(床)으로 알고 받노라. 다만 그대들의 정성(精誠)을 보아 잔(盞)이나 받겠으니 모두 한 잔씩(盞式) 올리라.』하시고 봉상(奉祥)에게『너는 잔(盞) 수(數)를 세어보라.』하시므로 모든 가족(家族)과 상급임원(上級任員)들이 차례로 잔(盞)을 올리니라.
상제(上帝)께서 잔(盞)마다 한 모금씩(式) 드시더니 십오잔(盞)이 되매『이제 낙서구궁도수(落書 九宮度數)니 그만 그치라.』하시니라.

73. 초(初)오일(日) 납향치성(臘享致誠)에 즈음하여 상제(上帝)께서 하교(下敎)하시기를『이 치성(致誠)은 옛날 제후가 천자(天子)를 위(爲)하여 드리던 제향(祭享)사 이므로 각(各) 포감방면별(布監方面別)로 올려야 하나 금년(今年)에는 내가 수범(垂範)함이니라 .』 하시니라.

74. 치성시(致誠時)에 규오(奎五)로 하여금 치성축문(致誠祝文)을 봉독(奉讀)하게 하시니 다음과 같으니라.
『납향치성문(臘享致誠文)
  세수월종 태극건설지월야(歲首月終 太極建成之月也)고 건건위월야(故 建建謂 月也)
  상천행도(上天行道) 이무신지랍(以戊申之臘) 대개신문(大開神門) 행삼계공사(行三界公事)    우익년(友翌年) 화천(化天) 도자이세(道子以歲) 봉도서향(奉度西向) 우(友)구년(年) 시입도    문(始入道門) 권권복응(拳拳服膺) 이언사십(以焉四十) 대병고행(帶病苦行) 이과 십년(已過    十年) 년즉을미(年則乙未) 월즉납월(月則臘月) 일즉납일(日則臘日) 천어사어미(天於斯於未)    도어사어미(道於斯於未) 아역여시미(我亦如是未) 천차 지차 도차(天此 地此 道此)복원성     령(伏願聖靈) 하감수찰(下鑑垂察)

해로는 첫 머리이고 달의 마침이니 태극이 세워지고 이루어지는 달이므로 세우고 세움은 이르는 달입니다.
상제님께서 도를 행하심에 1908년의 섣달에 신문(神門)을 크게 여셔서 삼계공사를 행하시고 또 이듬해에 화천하셨으며 도자(옥황상제님)는 그해에 도수를 받들어 서쪽(만주)로 향하였고 또 9년만에 비로소 도문에 들어와서 언제나 정성껏 간직하고 지킴이 어느덧 40년이며 병을 띠고 괴롭게 수행함도 이미 10년 이 지났습니다 해로는 곧 을미년(1955년)이고 달은 곧 섣달이며 날은 곧 납향 일입니다.
하늘은 이 미(未)에서 아름답고 도도 이 미에서 아름다우며 저도 역시 이와 같은 미이니 하늘도 이렇고 땅도 이러하며 도도 이러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령(구천상제님)께서는 굽어보시고 드리워 살피시옵소서.』

75 치성(致誠) 후(後)에 상제(上帝)께서 규오(奎五)에게 하문(下問)하시기를『참새가 납일(臘日)에는 세 발짝을 걷고 난다 하는데 그 뜻을 아느냐?』하시고 또 치국(治國)에게『삼월(月)에 눈이 오면 미역이 삭는다 하는데 그 이치(理致)를 아느냐?』하셨으나 모른다고 아뢰니『이 모 두 뜻이 있느니라. 더구나 납일(臘日)의 참새 한 마리가 큰 소 한 마리를 당(當)한다는 말도 있으니 깨우쳐 보라라.』하시니라.

76. 이달 이십오일(日) 조회석상(朝會席上)에서 임원(任員)들에게 하문(下問)하시기를『그대들은 남들이 태극도(太極道)를 물으면 어떻게 대답(對答)하느냐?』하셨으나 임원(任員)들은 당황(唐慌)하기만 하고 감(敢)히 말을 못하니라.
이에 하교(下敎)하시기를『오도(吾道)는 정도(正道)니라. 비유(譬喩)하면 비뚤어진 천지(天地)를 정음정양(正陰正陽)으로 바르게 하고 북극성(北極星)을 중앙(中央)으로 환원(還元)시키며 사람도 오장(臟) 육부(腑)를 뜯어고쳐 바르게 하는 도(道)니라.』하시니라.

77. 또 하교(下敎)하시기를『지금(只今)은 세상(世上)에 나와 있는 물체(物體)는 당초(當初)에 사용(使用)하지 않을 것은 없는 법(法)이니 바르게 쓰지 못하여 인류(人類)에게 해(害)를 끼쳤으나 지금이후(只今以後)로는 효용(效用)되게 하리라.』하시니라.

78.『노름군도 도(道)가 터지면 길난이가 되고 난봉군도 도(道)가 터지면 협객(俠客)이 되느니 삼계(三界)의 대도(大道)가 터진 도통자(道通者)의 진경(眞境)은 실(實)로 지상선(地上仙)이요, 인간신(人間神)이니라.』하시니라.

79.『물 한 방울 풀 한 포기의 고마움과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눈이 어두운 도인(道人)이니라.』하시니라.

80. 하루는 상제(上帝)께서 임원(任員)들에게 말씀하시기를『학문(學問)하는 사람을 예로부 터 사(士), 농(農), 공(工), 상(商)의 첫째로 이르지마는 그 학문(學問)이 되어야만 살아있는 학문(學問)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죽어있는 학문(學問)이 되느니라.
또한 중고이래(中古以來)로 학문(學問)은 문학(文學)이 위주(爲主)였으나 지금(只今)은 인문학(人文學)과 함께 자연학(自然學)이 있으니 그로써 인류문화(人類文化)와 인간생활(人間生活)을 윤택(潤澤)하게 하느니라.』하시니라.

81. 또 말씀하시기를『이렇게 한 번(番) 생각하여 보라. 만일(萬一) 이 세상(世上)사람이 모두 선비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하다 못해 승(僧)이나 신부(神父)가 되었다 하자. 그것이 좋은 세상(世上)이냐 하면 그렇지 않으니 정치(政治)는 누가 하며 농공상업(農工商業)은 누가 하느냐? 우리가 사는 사회(社會)는 씨뿌리고 가꾸는 농부(農夫)는 물론(勿論)이요, 땔 나무 하는 사람 심지어(甚至於) 주초상(酒草商)도 모두 필요(必要)한 사람들이라 백정(白丁)도 소중(所重)하고 어부(漁父)도 유공(有功)하니 범사(凡事)에 적부적우열(適不適優劣) 선악(善惡)을 함부로 논단(論斷)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직(職)의 고하(高下)나 업(業)의 귀천(貴賤)을 따질 것이 아니라, 인간 이 지닌 생명(生命), 생기(生氣), 생업(生業)을 소중(所重)히 알고 성(誠), 경(敬), 신(信)으로 하는 자(者)가 바른 인간(人間)이니라.』하시니라.

82. 또『사람의 생업(生業) 가운데 농업(農業)을 천하(天下)의 대본(大本)이라 함에는 큰 뜻이 있느니라. 곡식(穀食) 종자(種子)를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일은 인간(人間)이 하고 땅은 지기(地氣)로서 생장(生長)시키고 우로(雨露)를 내리고 일광(日光)으로 결실(結實)시키느니 이와 같이 천덕(天德), 지덕(知德), 인덕(人德)의 삼덕(德)이 합덕(合德)하여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농업(農業)은 금전수입(金錢收入)만을 위(爲)한 업(業)이 아니라, 인간(人間)의 생명(生命)을 보전(保全)하는 생업중(生業中) 모업(母業)이니라.
근자(近者)에 많은 기계(機械)가 발명(發明)되어 농작(農作)이 용이(容易)한데 이도 다 인간계(人間界)를 감호(鑑護)하시는 구천(九天)의 공사소지(公事所持)니라.』하시니라.

83.『상업(商業)을 크게 하면 실업가(實業家)라 하고 작게 하면 상인(商人)이라 하지마는 이 사람들이 있어야 중생(衆生)의 현실생활(現實生活)이 유지(維持)되는 것이니 그 공덕(功德)이 크니라. 그러나 수요자(需要者)에게 좋은 생활품(生活品)을 제공(提供)한 그 보은(報恩)으로 생활(生活)하는 것을 감사(感謝)하지 않고 불량품(不良品)을 고가(高價)로 폭리(暴利)를 취(取)하는 자(者)는 실(實)로 상인(商人)이 아닌 도인(盜人)이니라.
사회(社會)에 대(對)한 감사(感謝)의 봉사심(奉仕心)으로 하면 좋은 평판(評判)을 얻어 그 업(業)이 일익번창(日益繁昌)할 것이니 이 또한 합덕(合德) 조화(調和)니라.
상업자(商業者)가  만일(萬一) 불량품(不良品)으로 폭리(暴利)를 취하면 그 물품(物品)에 척이 붙어 상인(商人)과 수요자간(需要者間)에 원(寃)이 생기느니 설사(設使) 원(寃)척을 쌓아서 치부(致富)를 하였다 하여도 신명(神明)이 오래 유지(維持)하지 못하게 하리라.
그러므로 밥장수의 반(半) 숟가락 인심(人心)과 술장수의 몇 방울 후덕(厚德)도 쌓이면 산하(山河)같은 복(福)이 되느니라.』하시니라.

84.『옛날에 없던 기차(汽車), 자동차(自動車)가 사람과 물화(物貨)를 운송(運送)하는 태극기동(太極機動)의 도리(道理)를 보라. 음양합덕(陰陽合德)의 원리(原理)로 문물(文物)과 과학(科學)이 발달(發達)함이니라.
그러나 이것은 선경세계(仙境世界)가 차츰 전개(展開)되는 징조(徵兆)에 불과(不過)하니 구천상제(九天上帝)의 공사(公事) 도수(度數)에 따라 정신문화(精神文化)가 발달(發達)하여 조화(調化)를 이루게 하리라.』하시니라.

85.『정음정양(正音正陽)의 운도(運度)가 과학기구(科學器具)로도 나타나고 부녀(婦女)들의 사회활동(社會活動)에도 나타나서 앞으로 대도진법(大道眞法)을 배우고 닦으려는 자가 속출(續出)하리라.』 하시니라.

86. 상제(上帝)께서 기계종사(機械從事)하는 도인(道人)에게 말씀하시기를『그대들이 과학적 (科學的) 기계기술(機械技術)에 종사(從事)함이 곧 선경세계(仙境世界) 건설(建設)에 동참(同參)함이니 이 모두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부여(附與)하신 사명(使命)임을 인식(認識)할지니라. 그러나 현세(現世)의 과학문명(科學文明) 발달(發達)만을 지상(至上)으로 알고 자연(自然)을 정복(征服)코자 하거나 상제의 도수(度數)를 망각(忘却)하고 천의(天意)를 거슬리는 자는 후천(後天)의 새 기운(氣運)이 돌 때 살아 남지 못하리라.』하시니라.

87. 하루는 임원(任員)들에게 하문(下問)하시기를『그대들이 관망(冠網)을 하고 풍잠(風簪)을 다는 이치(理致)를 아느냐?』하시므로 규오(奎五)가『수탉도 계관(鷄冠)이 성계(成鷄)가 되고 다 큰 닭이라야 때를 맞추어 울수 있는 원리(原理)와 같다고 생각하나이다.』하고 아뢰니『그러니라.』하시니라.

88. 상제(上帝)께서 임원(任員)들에게 하교(下敎)하시기를『현대문물(現代文物)은 정갑신(丁甲神)이 혜두(慧竇)를 열어주어 그를 모방(模倣)한 대륜(大輪), 소륜(小輪)에 불과(不過)하니라.』하시니라.

89. 또『언습(言習)을 삼가하여 "안된다"느니 "죽는다"하는 말을 하지 말라.
망신살(亡身殺)이 들어 기도(祈禱)의 효험(效驗)도 없이 신명(神明)들이 모든 일을 말대로 되게 하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말로써 시비분쟁(是非紛爭)을 일으키고 말로써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자초(自招)하느니 언덕(言德)을 잘 가지라.』하시니라.

90.『속언(俗言)에 부녀자(婦女子)를 가리켜 "솥뚜껑 운전수(運轉手)라"느니 "내상(內相)이라"하는 것은 후천(後天)에 여자(女子)의 복록(福祿)과 권한(權限)이 크게 될 것을 말함이니라.』하시니라.

91.『속언(俗言)에 삼강(綱)오륜(倫)을 말하나 군사부(君師父) 일체(一體)로 보면 사위제강(師爲弟綱)과 사제유례(師弟有禮)를 더하여 사위제강(師爲弟綱) 사제유례(師弟有禮)이 되어야 하리라.』하시니라.

92.『대소변시(大小便時)에 정북(正北),정동(正東) 방향(方向)은 삼가하여야 하느니라.』하시고 조왕신(竈王神)을 잘 위(爲)하여야 복(福)을 받느니 주방(廚房)에서는 침도 뱉지 말라.』하시니라.

93.『인간(人間)의 참사(慘事) 길사(吉事)를 유가(儒家)에서는 운명(運命)이라 하고 불가(佛家)에 서(西)는 전생(前生) 숙업(宿業)이라 하며 서교(西敎)에서는 천주(天主) 섭리(攝理)라 하나 그 모두 일리(一理)는 있되 천기(天機)와 인사(人事)를 일률적(一律的)으로 간주(看做)함은 다 과부족(過不足)이니라.
천정운명(天定運命)이라 하여도 "성사재인(成事在人)"이라 하시고 "복록 성경신 (福祿 誠敬信) 수명 성경신(壽命 誠敬信)" 이라 하신 구천상제(九天上帝)의 가르침대로 인간(人間)이 지성(至誠)을 다 하면 수요화복(壽夭禍福) 을 변환(變換)할 수 있느니라.
그렇다고 명(命)의 체(體)까지를 좌우(左右)할 수는 없느니 체(體)의 도수(度數)와 용(用)의 도수(度數)가 합치(合致)되어야 옳은 운도(運度)니라.
그러므로 조화(調化)가 운도(運度)에서 가장 중요(重要)함을 알라.』하시니라.

94.『인간(人間)의 정성(精誠)과 의약(醫藥)의 효능(效能)이 도수(度數)에 합(合)하면 수명(壽命)이 연장(延長)되기도 하고 기도(祈禱)의 영험(靈驗)으로도 늘릴 수 있으며 전세(前世) 악업(惡業)으로 차세(此世)에 업보(業報)를 받기도 하나 , 차생(此生)에서 쌓은 태을주(太乙呪) 공부(工夫)와 봉공의 선업(善業)이 묵은 죄장(罪障)도 녹일 수 있느니라. 오직 닦을 수(修)자 하나가 모든 명운(命運)과 길흉(吉凶)의 근원(根源)이니라.』하시니라.

95.『좌이대시자(坐而待時者)는 좌이대사자(坐而待死者)니라.』하시니라.

96.『혹시(或是)는 시(是)가 아니고 요행수(僥倖數)는 수(數)가 아니니 요행수(僥倖數)를 바라지 말라.』하시니라.

97.『제 마음을 제 마음대로 못할 때가 있으리니 평상시(平常時)에 도(道)를 잘 닦아야 하느니라.』하시니라.

98.『오분간(分間)만 일심(一心)이 되어도 나와 대화(對話)하리라.』하시니라.

99.『진법주(眞法呪)의 직선조(直先祖)와 외선조(外先祖)는 인류조상(인류조상)의 근원(根源)이니라.』하시니라.

100.『우리 말로써 장차(將次) 세계(世界)의 통일어(統一語)가 되게 하리라.』하시니라.

101.『이태조(李太祖)와 무학(無學)이 말한 "돈안지유돈 불안지유불(豚眼只有豚 佛眼只有佛)"의 고사(故事)는 만사(萬事)를 자기 척도로 보지 말라는 뜻이니 알아두라.』하시니라.

102.『황방촌(黃尨村)이 말한 "삼녀지시비(女之是非) 개시(皆是)"의 고사(故事)는 만사(萬事)를 좋게 말하라는 뜻이니 알아두라.』하시니라.

103.『옛날 김모(金某), 박모(朴某)라는 두 노인(老人)이 친(親)하게 살다가 하루는 김모(金某)가 죽었다 생환(生還)하여  말하기를 "내가 염라국(閻羅國)에 가니 아직 올 때가 아니라 하며 다시 돌아가되 반드시 오늘 오시(午時)까지 한 사람을 보내라 하였으니 오늘 오시(午時)에는 부득이(不得已)이 앞 다리 위에서 행인(行人) 하나를 떨어뜨려 죽일 수 밖에 없노라." 하고 다리 위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기다리니라.
이때 한 잉부(孕婦)가 유아(幼兒)를 업고 앞을 지나갔으나 김모(金某)는 결행(決行)하지 못하고 다시 와서 "늙은 목숨 하나 살려고 젊고 어린 세 목숨을 죽일 수 없노라."하며 스스로 자결(自決)하므로 장사(葬事)를 지내니라.
다음날 김모(金某)가 박모(朴某)에게 현몽(現夢)하여 "나의 선행(善行)을 염라대왕(閻羅大王)이 가상(嘉尙)히 여겨 모산(某山) 산신(山神)으로 임명(任命)하여 부임(赴任)하게 되었으니 그대가 찾아오면 산삼(山蔘)은 얼마든지 주리라." 하니라.
그 후에 박모(朴某)가 찾아가자 "내가 산신(山神)이 되면 산삼(山蔘)은 임의(任意)로 하는 줄 알았더니 물각(物各)하여 불가능(不可能)하도다.
그대에게 대죄(大罪)를 지었노라." 하며 사과(謝過)하였다 하니 알아두라.』하시니라.

104. 이해 연말(年末)에 현금(現金) 일만원(萬圓)을 임원(任員)들에게 하사(下賜)하므로 이를 위계(位階)대로 고루 분배(分配)하여 세찬비(勢饌費)에 요긴(要緊)하게 쓰면서 상제(上帝)
홍은(鴻恩)에 더욱 감복(感服)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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