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진경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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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1
1. 옥황상제(玉皇上帝)께서 정사년(丁巳年) 원조(元朝)에 초패왕(楚覇王) 항적(項籍)의 고향(故鄕)인 강동지방(江東地方) 절강성(浙江省) 회계(會計)의 객사(客舍)에 행재(行在)하시니 이날 새벽에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하명(下命)하시기를『이제 나의 도수(度數)에 따른 그대의 대중화(大中華) 보은(報恩) 공사(公事)가 끝났으니 본가(本家)로 돌아가서 다시 나의 명교(命敎)에 따라 의식(儀式)을 거행(擧行)함으로써 도통(道統)의 연맥(連脈)과 인계(人界)의 인연(因緣)을 다지도록 하라. 이 곧 득도(得道)이니라.』하시니라.
2. 이어『이 글은 구세제민(救世濟民)할 주(呪)니 잘 기억(記憶)하라.』 하시며 다음의 두 주문(呪文)을 외어주시므로 암기(暗記)하시고 즉일(卽日) 회정(回程)하시니라.
『기도주(祈禱呪)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至氣今至 願爲大降』
『태을주(太乙呪)
훔치 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 도래 훔리함리 사바아(훔哆훔哆 太乙天上元君 훔哩哆耶 都來 훔哩喊哩 娑婆啊』
3. 십여일(十餘日) 후(後)에 본댁(本宅)에 환어(還御)하셔서 공부(工夫)를 속행(續行)하시며 근이개월간(近二個月間) 외출(外出)도 않으시고 경건(敬虔)한 심신(心身)으로 천명(天命)을 기다리시니라.
4. 이해 윤이월(閏二月) 초육일(初六日) 새벽에 공부(工夫)하시던 중(中) 구천상제(九天上帝)의 계시(啓示)를 받드시고 즉일(卽日)로 매씨봉귀(妹氏鳳貴)와 종제 길룡(從弟 吉龍)을 거느리시고 노고산(老姑山) 공부처(工夫處)에서 삼일간(三日間) 목욕재계(沐浴齋戒)하시며 많은 전수(奠需)를 장만하셔서 계시(啓示)에 따른 득도치성(得道致誠)을 올리시니 이 날이 도기(道紀) 구년(年), 정사(丁巳) 윤이월(潤二月) 초십일(初十日) 양력(陽曆) 사월(月) 일일(日) 계유(癸酉)이고 시각(時刻)은 계축시(癸丑時)니라.
5. 이튿날 축시(丑時) 기도시(丑時祈禱時)에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현현(顯現)하셔서 계시(啓示)하시기를『그대가 이제 득도(得道)하므로써 인계(人界)에서의 나의 도통(道統)을 다졌으니 흔감(欣感)하도다.』하시니라.
6. 이어 다음의 주문(呪文)을 외어주시니라.
『운장주(雲長呪)
천하영웅 관운장 의막처 근청천지 팔위제장 육정육갑 육병육을 소솔제장 일별 병영 사귀 음음 급급 여율령 사바아(天下英雄 關雲長 依幕處 謹請天地 八位諸 將 六丁六甲 六丙六乙 所率諸將 一別兵營 邪鬼 唵唵 急急 如律令 娑婆아』
『칠성주(七星呪) 칠성여래대제군 북두구신 증천대신 상조금궐 하부곤륜 조리강기 통제건곤 대괴탐랑 문곡거문 녹존염정 무곡파군 좌보우필 고상옥황 자미제군 대주천제 세입미진 하재불멸 하복부진 원황정기 내합아신 천강소지 주야상륜 속거소인 호도구령 원견존의 영보장생 삼태허정 육순곡생 생아양아 호아형아 허신형 괴작관행 필보표 존제 급급 여율령
(七星如來大帝君 北斗九辰 中天大神 上朝金闕 下覆崑崙 調理綱紀 統制乾坤 大魁貪狼 文曲巨門 祿存廉貞 武曲破軍 左輔右弼 高上玉皇 紫微帝君 大周天際 細入微塵 何災不滅 何福不臻 元皇正氣 來合我身 天罡所指 晝夜常輪 俗居小人 好道求靈 願見尊儀 永保長生 三台虛精 六淳曲生 生我養我 護我形我 虛身形 魁작관행 필보표 尊帝 急急 如律令)』
『오주(五呪)
시천지 가가장세 일월일월 만사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복록성경신 수명성경신 지기금지 원위대강 명덕관음 팔음팔양 지기금지 원위대강
명덕관음 팔음팔양 지기금지 원위대강 삼계해마 대제신위 원진천존 관성제군
(時天地 家家長世 日月日月 萬事知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至氣今至 願爲大降 明德觀音 八陰八陽 至氣今至 願爲大降
明德觀音 八陰八陽 至氣今至 願僞大降 三界解魔 大帝神位 願趁天尊 關聖帝君)』
7. 상제(上帝)께서 매씨(妹氏)과 길룡(吉龍)을 거느리시고 노고산(老姑山)에서 공부(工夫)에 정진(精進)하시더니 공부(工夫) 칠일(七日)만에 길룡(吉龍)이 문득 개안(開眼)하여 정신(精神)을 집중(集中)하면 혜안(慧眼)이 열려 과거(過去),현재(現在),미래(未來)를 통찰(洞察)할 수 있고 신통력(神通力)이 생겨 하려는 일은 다 할 수 있다하며 기뻐하니라.
상제(上帝)께서 시험(試驗)으로 그 법신(法身)을 본댁(本宅)에 보내셔서 왕대부인(王大夫人)의 냉수(冷水)에 급체(急滯)하심을 치유(治癒)하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이것이 개안(開眼)임에 틀림없으나 대도(大道)의 도통(道通)은 아니니 기뻐하지 말라.
신통력(神通力)은 함부로 사용(使用)하면 화(禍)를 자초(自招)하느니 오직 수도(修道)에만 전념(專念)하라.』하시니라.
8. 삼월(三月) 초(初)에 상제(上帝)께서 본가(本家)에 계실 때 용인인(龍仁人) 오석(烏石), 김혁(金赫)이 내방(來訪)하니라. 그는 일찍이 만주(滿洲)로 망명(亡命)하여 구국독립(救國獨立) 운동(運動)에 활약(活躍)하는 분으로서 도장(道丈)께 호형(呼兄)하는 친교(親交)의 동지(同志)인데 독립군(獨立軍) 자금모집책(資金募集責)으로 자주 순회(巡廻)하면서 도장댁(道丈宅)에는 매년(每年) 정초(正初)에 들르더니 금년(今年)에는 본국순회(本國巡廻)로 인(因)하여 늦었다 하니라.
9. 오석(烏石)은 예년(例年)에는 도착(到着) 즉시(卽時) 도장(道丈) 또는 서산공(曙山公)과 밀실(密室)에서 군자금문제(軍資金問題) 등(等) 독립운동관계(獨立運動關係)를 상의(相議)하였으나 이번(番)에는 먼저 상제(上帝)께 정진(精進) 중(中)이신 공부내용(工夫內容)과 앞으로의 계획(計劃)을 묻더니 다시 도장(道丈)께 말씀드리기를『제가 구랍(舊臘)에 군자금 모집차 (軍資金 募集次)본국(本國)에 갔다가 정읍(井邑)에서 이치복을 만나 교조(敎條) 증산선생(甑山先生)의 교법(敎法)을 들었나이다.
그의 말로는 지금 우리의 독립운동(獨立運動)도 증산선생(甑山先生)의 공사(公事)에 의(依)한 천지도수(天地度數)에 따라야 성취(成就)될 수 있으며 국가인민(國家人民)도 그 교법(敎法)이라야 광구(匡救)될 수 있다고 하였나이다.
그런데 지금(只今) 영식(令息)의 공부내용(工夫內容)도 그와 흡사(恰似)하오니 혼자 그러지 말도 입도 치성(入道 致誠)을 올리게 하심이 좋으리이다 하니라.
이에 상제(上帝)께서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들어 이미 득도(得道)하셨음을 알려주시니 오석(烏石)도 경탄(驚歎)하니라.
10. 이날 상제(上帝)께서 매씨(妹氏)와 길룡(吉龍)을 거느리시고 오석(烏石)에게서 증산상제(甑山上帝)의 내력(內力)을 비롯한 신봉수행(信奉修行)의 방법(方法)과 기도 치성(祈禱 致誠)의 절차등 설법(節次等 說法)을 들으시니라.
그 내용(內容)이 몸소 받드신 구천상제(九天上帝)의 계시(啓示)와 여합부절(如合府節)하고 그뿐 아니라 봉교(奉敎)하신 주문(呪文)도 일귀일자(一句一字)의 오착(誤錯)이 없음에 심독희자부(心獨喜自負)하시고 매씨(妹氏)와 길룡(吉龍)은 상제(上帝)께서 그동안 지도(指導)하신 교법(敎法)이 오석(烏石)의 설법(說法)과 일치(一致)함에 오석(烏石)과 함께 감복(感服)하니라.
11. 상제(上帝)께서 사월(四月) 이십팔일(二十八日) 봉천명일(奉天命日)을 맞이하셔서 공부처(工夫處)에서 치성(致誠)을 올리신 후(後)에 다시 구천상제(九天上帝)의 계시(啓示)를 받드시니『이제 그대의 만주공부도수(滿洲工夫度數)는 마쳤느니라. 속(速)히 환국(還國)하여 나의 본소(本所)를 찾고 나의 삼천(三天) 중(中) 천서(天書)와 천보 (天寶)를 받도록 하라.
다만 진주(眞主)로서 난법난도자(亂法亂道者)를 경계(警戒)하라.』하시므로 그날로 하산(下山)하셔서 도장(道丈)께 고(告)하신 다음 이달 말일(末日)에 매씨(妹氏)와 길룡(吉龍)을 거느리시고 환국(還國)길에 오르시니라. 이때 상제(上帝)의 보령(寶齡)은 이십삼세(二十三歲)시고 매씨와 길룡(吉龍)은 십삼세(十三歲)인데 행로(行路)의 편의(便宜)를 위하여 매씨(妹氏)를 남복(男服)으로 변장(變裝)시키시니라.
12. 발정 전일(發程 前日) 상제(上帝)께서 그곳 노고산(老姑山)의 관왕묘(關王廟)에 참예(參詣)하시더니 익조(翌朝)에 묘직(廟直)이 와서 문전(門前)에 부복(俯伏)하고 말씀드리기를『대인(大人)께서 다녀가신 후(後)에 관성제군(關聖帝君)의 존상(尊像)에 수염(鬚髥)이 없어졌사온데 이는 필시(必是) 대인(大人)의 도력(道力)에 의(依)함인가 하오나 만일 존상(萬一 尊像)에 누(漏)가 있사오면 소인(小人)은 죄(罪)를 면(免)할 수 없사오니 하찰(下察) 굽어 살펴 주옵소서.』하고 애원(哀願)하니라. 상제(上帝)께서 말씀하시기를『네 소원(所願)을 들었으니 돌아가 살펴보라.』 하시므로 돌아가보니 옛모습 그대로라. 하도 신이(神異)하여 사례(謝禮)하고자 다시 오니 상제(上帝)께서는 이미 발정(發程)하신 떠나신 후(後)니라.
13. 환행(還幸)을 안동(安東)까지는 마차편(馬車便)으로 하시고 압록강(鴨綠江)의 철교(鐵橋) 는 도보(徒步)로 건너시니 이때 국경(國境)인 철교(鐵橋)에는 왜헌(倭憲)의 경비(警備)가 삼엄(森嚴)하고 통행인(通行人)은 누구라도 몸 수색(搜索)을 당(當)하였으나 일행(一行)은 그들의 눈에 뜨이지 않으시니라. 철교(鐵橋)를 도보로 건너시니 상제(上帝)께서 혼자서 한어(韓語)도 중어(中語)도 아닌 방언(邦言)으로 누구와 담화(談話)하듯 하시므로 매씨(妹氏)가
이상(異常)히 여겨『오라버님 지금(只今) 하신 말씀이 어느 방언(邦言)이며 또 누구와 담화(談話)하셨나이까?』하고 여쭈니 『서양 신명(西洋 神明)들과 이야기 하 자니 그리하였느니라.』하시니라.
14. 상제(上帝)께서는 신의주(新義州)에 임어(臨御)하셔서 구년(年)만에 고국(故國) 땅을 밟으시는 감회(感懷)에 젖으시는데 길룡(吉龍)은 철교(鐵橋)를 건너자 갑작이 앞이 캄캄하고 힘이 빠지며 개안(開眼)과 신통력(神通力)이 일시(一時)에 걷히고 평범(平凡)한 소년(少年)의 상태(狀態)로 환원(還元)하니라
15. 상제(上帝)께서 도강(渡江) 후(後)에 강변(江邊)의 한 어선(漁船)에서 오색(五色)이 영롱(玲瓏)한 큰 물 고기 한 마리를 골라 부르는 값을 다 주고 사셔서 놓아 보내시니라.
물고기는 물로 들어갔다가 다시 솟아 올라 상제(上帝)께 네번(番) 경배(敬拜)를 올리는 양 (樣)으로 몸을 번득이고 광채(光彩)를 발(發)하면서 유유(悠悠)히 사라지니라.
매씨(妹氏)가 여쭈기를『오라버님은 어찌하여 비싼 값으로 고기를 사서 물에 놓아 보내시 나이까』하니『고기나 사람이나 살려고 함이 본능(本能)이 아니냐. 이제 그 물고기는 용왕(龍王)의 명(命)으로 나의 귀국(歸國)을 영접(迎接)하러 왔다가 나와 상봉(相逢)하게 만나게 됨 이니라.』하시니라.
16. 신의주(新義州)에서 일박(一泊)하시고 철도편(鐵道便)으로 다음날 한양(漢陽)에 임어(臨御)하셔서 광화문 객사(光化門 客舍)에서 수일간(數日間)을 행재(行在)하시며 경도(京都)의 풍물(風物)을 감상(鑑賞)하시니라.
철도편(鐵道便)으로 다음 날 밀양(密陽) 파서리(巴西里)의 외가(外家)에 임어(臨御)하셔서 구년(九年) 만에 상봉(相逢)하신 외척(外戚)들의 환대(環帶)를 받으시고 수일간(數日間) 종남산(終南山) 일대(一帶)의 지형(地形) 지세(地勢)를 관찰(觀察)하시면서 공부처(工夫處)를 물색(物色)하시니라. 압록강(鴨綠江)에서 개안(開眼)이 걷힌 이후(以後) 짜증이 가시지 않은 길룡(吉龍)을 창원(昌原) 중방(中房)그의 외가(外家)에 데려다 주시고 회문리(會文里) 고기(故基) 옛 집에서 종친(宗親)들과 오랫만의 정회(情懷)를 나누신 후(後) 구천상제(九天上帝)의 명(命)에 의한 본소(本所)를 찾기 위(爲)하여 다시 매씨(妹氏)를 거느리고 발정(發程)하시니라.
17. 상제(上帝)께서는 본소(本所)를 찾으라는 구천상제(九天上帝)의 계시(啓示)에 따라 지체(遲滯)없이 만주(滿洲)에서 환어(還御)하셨으나 쉽게 찾을줄 아신 본소(本所)에 대(對)하여 더 이상(以上)의 소상(昭詳)한 계시(啓示)가 없으시고 또 백방(百方)으로 탐문(探問)하셔도 알 수 없으시니라. 비록 오석(烏石)으로부터 이치복(李致福)과 차경석(車京石)의 말은 들으셨으나 구천상제(九天上帝)의 계시(啓示)는 그 사람을 찾으라는 것이 아니시므로 본소(本所)를 어디에 가야 찾을지 실(實)로 민민하시니라. 염하(炎夏)의 고초(苦楚)를 겪으시며 탐문 (探問)길을 재촉하여 팔월(八月) 중순(中旬)에 연산(連山)의 어느 서당(書堂)에 임어(臨御)하시니라.
18. 서당(書堂)의 훈장(訓長) 김모(金某)는 상제(上帝)의 품격(品格)과 기상(氣像)이 비범(非凡)하시고 문장(文章)이 탁월(卓越)하심에 감복(感服)하여 초면(初面)이면서도 지기(知己)처럼 환대(歡待)하니라. 상제(上帝)께서 그에게 경과사(經過事)를 말씀하시며 증산상제(甑山上帝)를 하문(下問)하셨으나 그는 순수(純粹)한 유학자(儒學者)로서 상제(上帝)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自己)와 함께 그 곳에서 고래(古來)의 유학(儒學)을 통달(通達)하여 치세(治世)의 경륜(徑輪)을 펴자고 권유(勸誘)하면서 더욱 극진(極盡)히 공대(恭待)하므로 수일(數日)을 유련(留連)하시다가 머무시다가 유학(儒學)으로서는 구세제민(救世濟民) 할 수 없음을 설(設)하시고 발정(發程)하시니라.
19. 어느날 사관(舍館)에 임어(臨御)하시니 여주(女主)가 상제(上帝)를 흠모(欽慕)하여 환대(歡待)하면서 교색(巧色)을 지었으나 상제(上帝)께서는 근엄(謹嚴)한 용의(容儀)로서 다만 증산상제(甑山上帝)의 대(對)한 소식(消息)을 하문(下問)하시니라.
여주(女主)는 공주읍(公主邑) 한모(韓某)에게서 들은 바 있다 하며 수십리(數十里)되는 읍내(邑內)의 한모(韓某)를 데려와서 증산상제(甑山上帝)의 소식(消息)을 아는대로 아뢰게 하니라.
20. 한모(韓某)는『저도 알현(謁見)하지는 못하고 전문(傳聞)전해 들은 바이오나 그 분은 호(號)를 증산(甑山)이라 할 뿐 명함(名啣)과 거처(居處)도 잘 알리지 않고 정읍지방(井邑地方)을 주유(周遊)하셨으며 사람들이 강립(姜笠)이니 강풍(姜風)이니 또는 방외일민(方外逸民) 이니 하였나이다. 풍운조화(風雲造化)를 자재(自在)로 하는 신인(神人)이라고도 하였으나 자신은 상제(上帝) 또는 미륵불(彌勒佛)의 권화(權化)라고 하시다가 수년전(數年前) 화선(化仙)하셨나이다.』하므로 상제(上帝)께서는 환국(還國)하신 후(後) 초문(初聞)하신 구천상제(九天上帝)의 소식(消息)에 반가우셨으나 찾으시는 본소(本所)는 그도 모른다 하니라.
21. 상제(上帝)께서는 더욱 용기(勇氣)를 내셔서 증산상제(九天上帝)의 강세지지(降世之地)라는 정읍(井邑) 객망리(客望里), 대각지지(大覺之地)라는 모악산(母岳山)의 대원사(大願寺), 공사지지(公事之地) 라는 김제(金堤)의 금산사(金山寺)와 동곡(銅谷) 등(等) 유적지(遺蹟地)를 두루 답사(踏査)하시고 그 종도(從徒)였다는 김형렬(金亨烈), 박공우(朴公又) 등(等)을 탐방(探訪)하시니라. 그러나 모두 정감(情感)이 통(通)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때마다 상제(上帝)의 계훈(戒訓)이 상기(想起)되셔서 경계심(警戒心)을 가다듬으시며 오직 본소(本所)를 찾으려는 일념(一念)으로 탐사(探査)만을 속행(續行)하시니라.
22. 구월(九月) 초(初) 어느날은 함열지방(咸悅地方)을 순행(巡幸)하시다가 너무 피로(疲勞)하시므로 큰 정자수(亭子樹) 아래서 잠시(暫時) 휴식(休息)하시니라.
이때 홀연(忽然)히 천상(天上)에서『본소(本所)는 다음에 찾고 지금(只今)은 우선(于先) 이곳 서해(西海)의 제1도 (第一島)에 가서 기지(基地)를 설(設)하고 공부(工夫)하며 하회(下回)를 기다리라.』하고 계시(啓示)하시므로 이는 분명(分明) 구천상제(九天上帝)의 도수(度數)리라 사량(思量)하시고 서해(西海)에서 제일(第一) 큰 태안(泰安)의 안면도(安眠島)로 향발(向發)하시니라.
23. 안면도(安眠島)에 임어(臨御)하셔서 첫 포덕(布德)으로 입도(入道)시키신 이정률(李正律)은 창기리(倉基里)에서 영농(榮農)하며 도내(道內)에서는 신망(信望)이 높은 사람으로서 상제(上帝)께 처음 뵈었을 때부터 그 기상(氣像)과 도력(道力)에 감복(感服)하여 지성(至誠)으로 시종(侍從)하시니라. 상제(上帝)께서 그의 주선(周旋)으로 정당리(正堂里) 어락곡(於樂谷)의 주가(住家)를 매수 수리(買收 修理)하셔서 공부처(工夫處)로 정(定)하시고 우일재(宇一齋)라 명명(命名)하신 다음 그 아들 상우(商雨)를 입도(入道)시켜 시봉(侍奉)으로 명(命)하시니라.
24. 상제(上帝)께서 창원(昌原)으로 사람을 보내셔서 길룡(吉龍)을 데려오시고 만주(滿洲)의 가족(家族)도 그곳에 합솔(合率)하도록 하시니라.
도장(道丈)을 위시(爲始)한 일부(一部) 가족(家族)은 이해 십월(十月)에 남은 가족(家族)은 다음해 봄에 모두 귀환(歸還)하여 상제(上帝)의 교도(敎導)에 따라 입도치성(入道致誠)을 올린 다음 우일재(宇一齎)에서 공부(工夫)하는 한편(便) 농지(農地)를 마련하여 농사(農事)에 주력(注力)하게 하시니 생계(生計)도 안정(安定)되니라.
25. 상제(上帝)께서 무오년(戊午年) 정월(正月)에 상우(商雨)에게 포덕(布德)을 명(命)하시니 종제 상식(從弟 商植)과 이웃 주민(住民) 삼십여인(三十餘人)이 입도(入道)하니라.
입도인(入道人)들에게 우일재(宇一齎)에서 기도주(祈禱呪) 또는 태을주(太乙呪)를 연송(連誦)하며 공부(工夫)하게 하시니 칠일(七日)이 되던 날 박봉운(朴奉云)이 공부(工夫) 중(中) 갑작이 큰소리로『나는 뵈었노라. 진실(眞實)로 뵈었노라. 옥황상제(玉皇上帝)님께 뵈었노라.』하며 춤을 추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며 환희(歡喜)에 넘치니라.
26. 같은 방(房)에서 공부(工夫)하던 도인(道人)들이 이상(異常)히 여겨 이를 제지(制止)하였으나 그의 힘이 너무 세어 당(當)할 수도 없고 처음 보는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唐慌)하니라. 옆 방(房)에서 공부(工夫)하시던 상제(上帝)께서『봉운(奉云)아!』하고 부르시니 봉운(奉云)이 놀라며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가 이윽고 존전(尊前)에 나아가 옥황상제(玉皇上帝)님께 배례(拜禮) 올리옵나이다.』하며 법배(法拜)를 올리는데 방법(方法)이 어긋나면 고쳐서 정식(正式)으로 사배(四拜)를 올리니라 .
봉운(奉云)이 정신(精神)을 가다듬고 말하기를『아무에게나 함부로 발설(發說)하지 못할 일이나 내가 천상(天上)에 계신 옥황상제(玉皇上帝)님의 옥안(玉顔)을 뵈었는데 바로 이 어른이 그 어른이시니 다시 함께 사배(四拜)를 올리자.』하므로 모두 사배(四拜)를 올리니라.
상제(上帝)께서는 『오직 천기(天機)니라.』하시고 모두에게 수구여명(水口如甁) 하도록 하시니라.
27. 봉운(奉云)은 그 후(後)에도 수차(數次) 그러한 행동(行動)을 하더니 그때마다 상제(上帝)께서 부르시면 즉시(卽時) 중지(中止)하니라.
하루는 상제(上帝)께서 치성(致誠)을 올린 전수(奠需)를 전부(全部) 내려주시니 먹도록 명(命)하시니 봉운(奉云)은 그 많은 음식(飮食)을 거의 다 먹으므로『네가 비록 옳게 보았어도 이는 허령(虛靈)이니 이를 거두노라.』하시며 봉운(奉云)을 궤좌(跪坐)시키시고 담배가루 한 되를 마른 흙가루에 섞어주시며『이 담배와 흙을 이 자리에서 가려내라.』하시니라.
봉운(奉云)이 온 종일(終日) 궤좌(跪坐)하여앉아서 얼굴도 들지 않고 가리더니 이로부터 허령(虛靈)기운이 걷히니라.
28. 상제(上帝)께서 상식(商植)을 시봉(侍奉)으로 명(命)하셔서 모든 심부름을 시키시며 귀여워하시고 연갑(年甲)인 길룡(吉龍)과 사이 좋게 지내도록 하시며 때로는 씨름도 하게 하시니라. 하루는 어린 염소 한 마리를 사주셔서 잘 기르도록 하시더니 그 후(後) 염소가 크게 자라매 길룡(吉龍)과 상식(商植)을 타보게 하시고 뿔을 잡고 밀어 보게 하시니라.
그들이 아무리 밀어도 밀리지 않고 도리어 넘어짐을 보시고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염소도 소는 소니라.』하시니라.
29. 이해 추석(秋夕)에 온 가족(家族)과 도인(道人)들이 우일재(宇一齎)에 모여 명절치성(名節致誠)을 올린 후(後) 당년(當年) 풍작(豊作)이라하여 모두 기뻐함을 보시고 상제(上帝)께서 말씀하시기를『농사(農事)가 잘 된 것도 좋은 일이나 우리는 공부(工夫)와 포덕(布德)에 진력함이 본분(本分)이니라.』하시니라.
30. 또 말씀하시기를『나는 본소(本所) 찾는 일이 선무(先務)이니 이 길로 전라도(全羅道)로 떠나니라.』하시고 이튿날 출정(出程)하시니 상우(商雨)가 수종(隨從)하니라.
이는 그동안 정률(正律)을 전라도(全羅道)로 보내셔서 본소탐문(本所探問)을 하명(下命)하셨던 바 돌아와서
『구천상제(九天上帝)님께서는 이미 화천(化天)하셨으나 전라도(全羅道) 정읍지방(井邑地方)에 가시면 소상(昭詳)한 내력(來歷)을 알 수 있고 본소(本所)도 찾으실 듯 하나이다.』하고 복명(復命)한 연유(緣由)이니라.
31. 상제(上帝)께서는 당초(當初)에 오석(烏石)이 말한 치복(致福)과 경석(京石)은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경계(警戒)하신 자(者) 생각되어 찾지 않으시고 또 객망리(客望里)나 동곡(銅谷) 등 (等) 유적지(遺蹟地)는 이미 그들의 오손(汚損)시킨 바 되었을 뿐 아니라 계시(啓示)는 그 사람이나 지역(地域)을 지적(指摘)하심이 아니고 본소(本所)를 찾으라고만 하셨으니 이는 필시(必是) 비장지처(秘藏之處)리라. 확신(確信)하시며 때를 기다리시니라. 그러나 본소(本所)를 찾기 위(爲)하여는 부득이(不得已) 구천상제(九天上帝)의 종도(從徒)들에게 수문(搜問)하지 않을 수 없으셔서 우선(于先) 원평(院坪)의 김자현(金自賢)을 찾으시니 자현(自賢)은 출타(出他) 중(中)이고 아들 태진(泰振)이 있어 영접(迎接)하니라.
32. 태진(泰振)이 사뢰기를『가친(家親)이 증산선생(甑山先生)의 종도(從徒)임은 사실(事實)이옵니다. 선생(先生)님 화천(化天) 후(後)에 그 종도(從徒) 치복(致福),경석(京石),형렬(亨烈) 등(等)이 각기(各其) 교단(敎團)을 세웠으나 모두 혹세 무민(惑世誣民)의 혐의(嫌疑)로 일부(一部)는 관(官)에 구금(拘禁)되고 가친(家親) 또한 부재(不在) 중(中)이옵니다.
선생(先生)님께서는 미륵불(彌勒佛) 또는 상제(上帝)로 자처(自處)하였으나 그 종도(從徒)들은 음양술객(陰陽術客)으로 밖에 나타내지 못하고 있으니 가친(家親)을 만나보신들 무슨 소용(所用)이 있겠나이까?』하니라. 그날 밤에 귀가(歸家)한 자현(自賢)을 만나시니 그는 상제(上帝)께 말씀드리기를 『증산선생(甑山先生)님께서 "도통(道通)은 너에게만 주리라" 하셨나이다.』하면서 자기(自己)만이 도통을 받을 것처럼 자만에 차 있느니라.
상제(上帝)께서 본소(本所)에 대(對)하여 채문(採問)하셨으나 그는 들은 일조차 없다 하니라.
33. 상제(上帝)께서 십여일(十餘日)을 원평(院坪)에 행재(行在)하시며 사방(四方)으로 수문(搜問)하셨으나 모두 이와 같으므로 아직 본소(本所)를 찾을 운도(運度)가 아니니 더욱 공부( 工夫)하면서 천명(天命)을 기다리기로 작심(作心)하시고 우일재(宇一齎)로 환어(還御)하셔서 공부(工夫)를 계속(繼續)하시니라.
34. 십월(十月)에 상제(上帝)께서 우일재(宇一齎) 공부(工夫)를 종료(終了)하신 다음 시종(侍從)들을 거느리시고 다시 원평(院坪)으로 행행(行幸)하셔서 정률(正律)로 하여금 정읍군(井邑郡) 감곡면(甘谷面) 계룡리(桂龍里)에 있는 황새 마을 이병건(李炳健)의 가대(家垈)를 매수(買收)하게 하셔서 공부(工夫)하시며 천명(天命)을 기다리기로 작심(作心)하시고 이 해 12월에 안면도(安眠島)의 가족(家族)과 도인(道人) 일부(一部)를 그곳으로 이사(移徙)시키니라.
35. 상제(上帝)께서 황새마을 공부처(工夫處)에서 수도(修道)하시며 포덕(布德)하시니 삼십여인(三十餘人)이 입도(入道) 하니라.
이 소식(消息)을 들은 치복(致福)이 수차(數次) 찾아와서『증산선생(甑山先生)님께서 해인(海印)은 나에게 주신다 하셨으므로 그 교법(敎法)과 공사(公事)가 모두 나를 위(爲)하여 하신 것이니 나의 제화교(濟化敎)를 믿고 수도(修道)하면 될 터인데 본소(本所)는 찾아서 무엇하리요』하며 유인(誘引)하였으나 불윤(不允)하시니라.
36. 이달 이십육일(二十六日)에 상제(上帝)께서 황새마을 공부처(工夫處)에서 여러 도인(道人)을 거느리고 공부(工夫)하시더니 신시(申時)경에 환어(還御)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오늘 초패왕(楚覇王)의 원(寃)척을 풀었노라. 이제 후천(後天) 해원도수(解寃度數)의 이 공사(公事)로써 그 원(寃)척을 풀었으니 이로부터 인간세상(人間世上)의 모든 원(寃)척이 차츰 풀리어 상생(相生)의 새 판국(版局)이 열리리라. 천지간(天地間)의 원(寃)척이 신명(神明)과 사람 사이에도 쌓여 있고 또 나라와 나라 사이 금수 초목(禽獸草木)까지 없는 곳이 없어서 군생(群生)이 척신(神) 망령(亡靈)에 시달림을 받으니 어찌 영일(寧日)이 있으리요. 그러나 이 해원도수(解寃度數)에 따라 모두 해원광구(解寃 匡救)되어 장차(將次) 오만년(五萬年) 청화선경(淸華仙境)이 절로 이루게 하리라.』하시니라.
37. 기미년(己未年) 원조(元朝)에 상제(上帝)께서 명절치성(名節致誠)을 올리신 후(後) 도인(道人)들에게 하교(下敎)하시기를『내가 봉천명(奉天命) 한지도 어언 십년(於焉 十年)이 되었으나 아직 본소(本所)를 찾지 못하고 도체(道體)도 갖추지 못하였으되 금년(今年)에는 정녕(叮嚀) 이루리니 너희들은 구천상제(九天上帝)님과 나의 도수(度數)를 믿고 가일층(加一層) 정려(精勵) 할지니라.』하시니라.
38. 정월(正月) 십오일(十五日)에 명절치성(名節致誠)으로 철야(徹夜)하시고 공부(工夫)를 계속(繼續)하시던 중(中)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계시(啓示)하시기를 『보라 때가 이르렀으니 이제 본소(本所)가 목전(目前)에 다가왔도다. 삼년간(三年間)의 일념(一念)이 도수(度數)와 부합(符合)됨이니라. 이 본소(本所)는 무극(无極)의 대도(大道)로써 광구천하(匡救天下)의 진법(眞法)을 응원(應元) 보화(普化)할 만국(萬國) 본소(本所)니라.』 하시니라.
39. 상제(上帝)께서 천안(天眼)으로 풍설(風雪) 中에 한 여인(女人)이 찾아옴을 보시니라.
상우(商雨)를 시종(侍從)시키시고 문간(門間)에 거동(擧動)하셔서『반가운 손이 오는도다.』하시고 망견(望見)하시니 한 여인(女人)이 풍설(風雪)속을 헤치고 달려와서 상제(上帝)께 공손(恭遜)히 경례(敬禮)하며『대인(大人)께서 만주 봉천(滿洲 奉天)에서 오셔서 증산선생(甑山先生)님의 본소(本所)를 찾고자 하시옵나이까』하고 사뢰니라.
상제께서『그렇노라.』하시고 추위에 떠는 여인(女人)을 더운 방(房)으로 인도(引導)하시니라.
40. 여인(女人)이 아뢰기를『저의 남편(男便)은 김기부(金基夫)이옵고 저는 박가(朴哥)이옵니다. 저희가 정읍(井邑) 북면(北面) 화해리(花海里)에 살면서 증산선생(甑山先生)님 재세시(在世時)에는 김승연(金昇淵)과 함께 시봉(侍奉)하다가 화천(化天)하신 후(後)에는 유족(遺族)을 섬기고 있사옵니다.
유족(遺族)은 권씨대모(權氏大母), 정씨사모(鄭氏師母), 순임낭자(順任娘子) 세분이신데 객망 리(客望里)에 사시더니 선생(先生)님의 매씨(妹氏) 선돌부인(夫人)께서 수년전(數年前)에 화해리(花海里) 마동(馬洞) 당신댁(當身宅)으로 합솔(合率)하게 하셔서 지금(只今)까지 사시옵니다.
그 가택(仮宅)은 본래 선생(先生)님께옵서 화천(化天) 전년(前年) 가을에 사셔서 선돌부인(夫人)에게 주신 집이 옵니다.』하니라.
41. 이어『부인(夫人)께서는 지금(只今) 삼십구세(三十九歲)시오며 일찍이 고부(古阜) 입석리의(立石里) 박씨댁(朴氏宅)에 출가(出家)하셨으나 십년(十年)이 소생(所生)이 없으셔서 부군 박창국(夫君 朴昌國)이 소실(小室)을 두고 박대(薄待)가 심하므로 선생(先生)님께서 그 집을 사주셨나이다.
화천(化天) 당년 정월 십오일(十五日)에 선생(先生)님께서 그 집을 손수 수리(修理)하시고 도배(塗褙)까지 하셨으며 부인(夫人)에게『이 곳이 나의 본소(本所)니라. 너는 이곳에 살다가 10년 후 이날 이 본소(本所)를 찾는 후천진인(後天眞人) 을미생(乙未生)에게 나의 도통(道通)을 전(傳)하라.』하는 요지(要旨)로 하명(下命)하셨다 하옵이다』하니라.
42.『부인(夫人)께서는 현숙(賢淑)하신 성품(性品)으로 유명(遺命)을 받들어 일심(一心)으로 십년(十年)을 고대하고 계시옵니다.
저희는 부인(夫人)을 고모(姑母)님으로 존대(尊待)하며 시종(侍從)들고 있사온데 오늘 아침 절사(節祀) 후(後)에 고모(姑母)님께서 저에게 이와 같은 사실(事實)을 처음으로 말씀하시고 『오늘 새벽 천계(天啓)를 받들매 만주(滿洲) 봉천(奉天)에서 오신 조모(趙某)라는 청년 도사(靑年 道士)가 지금(只今) 원평(院坪) 건너 황새마을에서 공부(工夫)하며 본소(本所)를 찾으려 애쓴다 하시니 네가 가서 사실(事實)을 알아본 다음 너의 집에 모시고 내게 전(傳)하라.』하셔서 이렇게 찾아뵈었사오니 속(速)히 가사이다.』하므로 상제(上帝)께서 박여인(朴女人) 집에 임어(臨御)하시니라.
43. 이에 앞서 갑인년(甲寅年) 봄에는 이곳에 황모(黃某)가 찾아와서 고모(姑母)의 지도하(指導下)에 이년간(二年間) 공부(工夫) 하다 이루지 못하고 이어서 병진년(丙辰年) 가을에는 박모(朴某)라는 수도인(修道人)이 제자(帝者) 송모(宋某)를 데리고 고모(姑母)께 찾아와서『제가 들은 바에는 " 후천 진인(後天 眞人) 은 을미생(乙未生)이요 천문(天文),천서(天書)는 마동출(馬洞出)이라" 하였는데 이곳 마동(馬洞)은 장차(將次) 천하만국사무소(天下萬國事務所)가 될 영지(靈地)신령스러운 곳오니 이 사람에게 공부(工夫)의 길을 열어주소서.』하고 부탁(付託)하니라.
고모(姑母)께서는 송모(宋某)에게 기대(期待)를 걸고 공부(工夫)시켰으나 삼년(三年)이 되도록 성취(成就)하지 못하므로 안타까와 하시니라.
44. 이때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고모(姑母)에게 계시(啓示)하시기를『시유기시(時有其時)요 인유기인(人有其人)인데 네 눈이 그리 어두우냐, 그 자(者)사람은 진인(眞人)이 아니니 돌려 보내라. 이제 내일의 성취자(成就者)며 나와 일체(一體)인 진인(眞人)인 을미생(乙未生)을 만나리라.』하시니라.
그러나 고모(姑母)께서는 삼년간(三年間) 돌보아준 미련(未練)을 버리지 못하시고 주저(躊躇)하시니라.
45. 수일(數日) 후(後)에 다시 그와 같은 계시(啓示)가 있어 고모(姑母)께서는 결의(決意)를 굳히셨으나 그가 더 있기를 애원(哀願)하므로 고모(姑母)께서도 인정상(人情上) 박절(迫切)하게 할 수 없어 고민(苦悶)하시는데 이번(番)에는 상제(上帝)께서 크게 힐책(詰責)하시며『당장(當場) 돌려보내지 않으면 네가 독사(毒蛇)의 피를 맨발로 밟게 하리라.』하시며 발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보이시니라.
고모(姑母)께서 이때 갑작이 가슴에 통증이 나므로 살피시니 상제(上帝)의 발바닥에 묻었던 핏자국 모양(模樣)처럼 빨갛게 응혈(凝血)되는지라 이에 결연(決然)히 송모(宋某)를 추방(追放)하 시니 통증(痛症)과 응혈(凝血)이 이내 풀리니라.
46. 고모(姑母)께서는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상제(上帝)를 우선(于先) 박여인(朴女人)집에 모시게 하고 수일간(數日間) 동정(動靜)을 살피면서 구천상제(九天上帝)의 계시(啓示)를 대기(待機)하시니라. 십구일(十九日) 밤에 다시 계시(啓示)하시기를『무엇을 망설이느냐. 나의 공사(公事)를 성취(成就)시킬 진법(眞法)의 진주(眞主)이니 날 본듯이 맞으라.』하시며 그 안용(安容)까지 익조(翌朝)에 상제(上帝)를 본소(本所)로 모셔서 상면(相面)하신 다음 가족(家族)들과 수인사(修人事)하게 하시니 상제(上帝)께서는 미리 준비(準備)하신 채단(綵緞)을 예물(禮物)로 드리시니라.
47. 상제(上帝)를 맞으신 가족(家族)들은 계시(啓示)에서 보신대로 천종(天縱)의 도태(道態)와 고일(高逸)하신 기우(氣宇)며 공근(恭懃)하신 언동(言動)에 감복(感服)하여 못내 기뻐하시니라. 대모(大母)께서는『내 아들과 같은 천지(天地)의 진인(眞人)을 살아서 대(對)하니 여한(餘恨)이 없도다.』 하시며 손을 잡고 감읍(感泣)해서 우시니라.
고모(姑母)께서는 본소(本所)의 내력(來歷)과 황모(黃某)와 송모(宋某)에 대(對)한 경위(經緯)등(等)을 설명(說明)하신 다음『이제야 진인(眞人)을 만났으니 기쁘기 한(限)이 없으나 잠시라도 송모(宋某)와 황모(黃某)의 일로 인(因)하여 진인(眞人)을 의심(疑心)하였으니 송구(悚懼)하기 그지 없습니다. 더구나 현무경(玄武經)과 주문책(呪文冊) 등(等)은 모두 그들에게 주었는데 회수(回收)할 길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으리요』하시며 민연(泯然)하시니라.
48. 상제(上帝)께서 고모(姑母)에게 말씀하시기를『너무 심려(心慮)마옵소서. 상제(上帝)의 진품증표(眞品證標)는 저절로 진주(眞主)인 나에게 전수(傳授) 될 것을 굳게 믿고 있나이다.』하시니라.
이때 문득 옛날 진시황(秦始皇)의 갱유분서(坑儒焚書)에도 칠서(漆書)가 벽중(壁中)에서 보존(保存) 전래(傳來)된 고사(故事)가 상기(想起)되셔서『구천상제(九天上帝)의 본소(本所)가 이곳이라면 도통(道通)의 증표(證標)도 이곳에 있음이라』확신(確信)하시고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친(親)히 도배(塗褙)하신 벽(壁)과 천정(天井)을 유심(有心)히 살피시니 상제(上帝)께서 앉으신 바로 뒷벽(壁)의 천정(天井) 아래에 시선(視線)이 닿으시자 형언(形言)할 수 없는 영감(靈感)속에 한 곳이 섬광(閃光)으로 번쩍이므로 일어나셔서 그곳을 두드리시니 비어 있는 소리가 나니라. 고모(姑母)께서 도배(塗褙)를 뜯으시고 호미로 벽(壁)을 파시니 과연(果然) 그 속에 목함(木函)이 마련되어 있으니라.
상제(上帝)께서 함문(木函)을 열으시니 그 안에서 전광(電光)이 발산(發散)하고 가대(家垈)와 벽(壁)이 진동(震動)하며 천서(天書)인 현무경(玄武經)과 주문서(注文書)가 비장되어 있으니라.
49. 천서(天書)를 발견(發見)하신 상제(上帝)께서는 물론(勿論) 이를 본 유족(遺族)들도 너무나 감격(感激)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라 묵묵(黙黙)히 서로 쳐다보기만 하니라.
상제(上帝)께서 천서(天書)를 향(向)하여 사배(四拜)를 올리시고 부복(俯伏) 심고(心告)하신 다음 정중(鄭重)히 천서(天書)를 내리셔서 대모(大母)와 고모(姑母)에게 펴 보이시고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친서(親書) 하신 쓰신 천서(天書)임을 확인(確認)하게 하시니 대모(大母)께서는 낙루(落淚)하시며『이야말로 진서(眞書) 천서(天書)로다. 내 일찍부터 증산(甑山)이 내 아들이기보다 상제(上帝)님이심을 깨닫고 현무경(玄武經)이 천서(天書)임을 믿었지마는 이렇게 비장(秘藏)한 줄을 몰랐고 그대가 또 이렇게 전수(傳授)하게 될 도다. 그 상제(上帝)에 그 진주(眞主)로다.』하시니라.
50. 고모(姑母)께서도『오라버님께서 만(滿) 십년(十年) 전(前)에 "이 집에 네가 살다가 진인(眞人)에게 전(傳)하라. 이집이 본소(本所)니라" 하시고 작야(昨夜)에는 "무엇을 망설이느냐" 하셔서 대인(大人)께서 진법(眞法)의 진주(眞主)이심을 확신(確信)하였으나 여러 사람이 마당과 방(房)구들까지 파 보았어도 찾지 못한 진필천서(眞筆 天書)를 이렇게 전수(傳授) 받으시므로써 상제(上帝)의 도통(道統)을 계승(繼承)하실 줄을 몰랐나이다.
그동안 황모(黃某)와 송모(宋某)가 가져간 위본(僞本) 현무경(玄武經)과 주문책(呪文冊)을 진본(眞本)으로 알고 걱정하였더니 이 천서(天書)로써 모든 걱정이 풀렸나이다.
과연(果然) 진인(眞人)이라야 능(能)히 진서(眞書)를 지니실 구천(九天)의 도수(度數)를 깨달았사오며 나의 소임(所任) 또한 이로써 다함이라 생각하나이다.』하시며 천서(天書)를 비단보(緋緞褓)자기에 싸서 상제(上帝)께 드리니 이 날이 정월(正月) 이십일(二十日) 우수절(雨水節)이니라.
제 2 장-2
51. 천서(天書)는 한지(韓紙)를 사방(四方) 구촌(九寸)으로 접어서 철(綴)하고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친필(親筆)하신 책(冊)이니라.
현무경(玄武經)은 십삼장(十三張) 이십육면(二十六面)에 문자(文字)와 부도(符圖)가 기록(記錄)되어 있으니 권말 부록(卷末 附錄)과 같으며 주문서(呪文書)는 표지(表紙)에『주문(呪文)』이라 쓰여 있고 칠장(七張) 십삼면(十三面)에 십일종(十日種)의 주문(呪文)이 기록(記錄)되어 있으니 이는 이미 계시(啓示)로 봉승(奉承)하신 오종(五種)의 주문(呪文)과 다음의 주문(呪文)이니라.
『진법주(眞法呪)
구천 하감지위 옥황상제 하감지위 서가여래 하감지위 명부시왕 응감지위 오악산왕 응감지위 사해용왕 응감지위 사시토왕 응감지위 관성제군 응감지위 칠성대제 응감지위 직선조 하감지위 외선조 응감지위 밀직사자 내대지위 우직사자 내대지위 좌직사자 내대지위 명부사자 내대지위 천장길방하야 이사진인하시나니 물비소시하사 소원성취케 하옵소서
九天 下鑑之位 玉皇上帝 下鑑之位 釋迦如來 下鑑之位 冥府十王 應鑑之位 五岳山王 應鑑之位 四海龍王 應鑑之位 四時土王 應鑑之位 關聖帝君 應鑑之位 七星大帝 應鑑之位 直先祖 下鑑之位 外先祖 應鑑之位 密直使者 來待之位 右直使者 來待之位 左直使者 來待之位 冥府使者 來待之位 天藏吉方하야 以賜眞人하시나니 勿秘昭示하사 所願成就케 하옵소서』
『이십팔수주(二十八宿呪)
각항저방심미기 두우여허위실벽 규루위묘필자삼 정귀유성장익진 등우 마성 오한 왕량 가복 진준 경감 두무 구순 부준 잠팽 견담 풍이 왕패 주우 임광 좨준 이충 경단 만수 합연 비융 요기 유식 경순 장궁 마무 유융 제대신장 소솔제장 일반병영 음음 급급 여율령
角亢氐房心尾箕 斗牛女虛危室壁 奎婁胃昴畢觜參 井鬼柳星張翼軫 鄧禹 馬成 吳漢 王梁 賈復 陳俊 耿감 杜茂 寇恂 傅俊 岑彭 堅담 馮異 王覇 朱祐 任光 祭遵 李忠 景丹 萬脩 蓋延 邳肜 요期 劉植 耿純 臧宮 馬武 劉隆 諸大神將 所率諸將 一般兵營 唵唵 急急 如律令』
『이십사절주(二十四節呪)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장손무기 효공 두여회 위징 방현령 고사렴 울지경덕 이정 소우 단지현 유홍기 굴돌통 은개산 시소 장손순덕 장량 후군집 장공근 정지절 우세남 유정회 당검 이세적 진숙보 제대신장 즉통 천문지리 풍운조화 팔문둔갑 육정육갑 지혜용력 음음 급급 여율령
立春 雨水 驚蟄 春分 淸明 穀雨 立夏 小滿 芒種 夏至 小暑 大暑 立秋 處暑 白露 秋分 寒露 霜降 立冬 小雪 大雪 冬至 小寒 大寒 長孫無忌 孝恭 杜如晦 魏徵 房玄齡 高士廉 尉遲敬德 李靖 蕭瑀 段志玄 劉弘基 屈突通 殷開山 柴紹 長孫順德 張亮 侯君集 張公謹 程知節 虞世南 劉政會 唐儉 李世勣 秦叔寶 諸大神將 卽通 天文地理 風雲造化 八門遁甲 六丁六甲 智慧勇力 唵唵 急急 如律令』
『도통주(道通呪)
천상원룡 감무태을성 두우군 신아신아 삼아삼아 이도통도덕으로 상통천문하고 하달지리하고 중찰인사케 하옵소서
天上元龍 坎武太乙星 斗牛君 神아神아 參아參아 以道通道德으로 上通天文하고 下達地理하고 中察人事케 하옵소서』
『개벽주(開闢呪)
천상옥경천존신장 천상옥경태을신장 옥경옥추수문장군 상하변국뇌성벽력장군 백마원수대장군 뇌성벽악장군 악귀잡귀금란장군 삼수삼계도원수 지신벽력대장군 천동지동음양벽력대장군 좌부관원수 우부마원수 천지조화풍운신장 응양오행기문신장 육정육갑둔갑신장 태극두파팔문신장 산상취소맹호장군 다솔신군백기장군 용반호거귀곡신장 천만악귀타수신장 이매망량휘치신장 법률사마진멸신장 풍도살수호천신장 오백년간일향신장 삼태칠성제대신장 이십팔수제위신장 계명장경이부신장 구신태백금령신장 이십사절제대신장 십이신제부신장 천지오방호령신장 상하팔위순찰신장 만리풍운전화신장 육정육갑소솔신장 구령삼정응원신장 만고역대영웅호걸제대신장 통합천사장 사십팔대장군 사만신장 팔만사천제대신장 감아미성 조아우일 대운대사 개개강림강림 시위아봉명신 대운대명 태일성철 상수불리 대도통 대위정 여천지합 여사시합 여음양합 여오행합 통천지 통만고 통오방 통사해 사해용신 역발산악 위진건곤천지 도통천지조화 무궁불식 진퇴유법 오봉구천상세군 칙속칙속 음음 급급 여율령
天上玉京天尊神將 天上玉京太乙神將 玉京玉樞守門將軍 上下變局雷聲霹靂將軍 白馬元帥大將軍 雷聲酸惡將軍 惡鬼雜鬼禁亂將軍 三首三界都元帥 地神霹靂大將軍 天動地動陰陽霹靂大將軍 左剖關元帥 右剖馬元帥 天地造化風雲神將 陰陽五行奇門神將 六丁六甲遁甲神將 太極斗破八門神將 山上吹嘯猛虎將軍 多率神軍百騎將軍 龍盤虎踞鬼哭神將 千萬惡鬼打首神將 이魅魍魎揮致神將 法律邪魔盡滅神將 風濤殺首呼天神將 五百年間一享神將 三台七星諸大神將 二十八宿諸位神將 啓明長庚二府神將 九辰太白禁令神將 二十四節諸大神將 十二辰諸剖神將 天地五方號令神將 上下八位巡察神將 萬里風雲轉化神將 六丁六甲所率神將 九靈三精應元神將 萬古歷代英雄豪傑諸大神將 統合天四將 四十八大將軍 四萬神將 八萬四千諸大神將 感我微誠 助我宇一 大運大事 改改降臨降臨 侍衛我奉命身 大運大命 太一聖哲 常隨不離 大道通 大位定 與天地合 與四時合 與陰陽合 與五行合 通天地 通萬古 通五方 通四海 四海應身 力拔山岳 威振乾坤天地 道通天地造化 無窮不息 進退有法 吾奉九天上世君 勅速勅速 唵唵 急急 如律令』
『해마주(解魔呪)
삼계해마 대제신위 원진천존 관성제군』
三界解魔 大帝神位 願진天尊 關聖帝君』
『신성주(神聖呪)
신성대제 태을현수 어아강설 범어영극
神聖大帝 太乙賢首 於我降說 範於靈極』
52. 상제(上帝)께서 천서(天書)를 받으시고 대모(大母)와 고모(姑母)에게 말씀하시기를『내가 이제 진법(眞法)의 진주(眞主)임이 천의(天意)로 밝혀졌으니 이 방(房) 또한 상제(上帝)께서 나에게 주신 본소(本所)며 공부처(工夫處)입니다.
지금(只今)부터 천서(天書)를 받들고 이 방(房)에서 공부(工夫)하겠으니 편려(鞭勵)하여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하시고 그 방(房)을 공부실(工夫室)로 정(定)하셔서 외인(外人)의 출입(出入)을 금(禁)하시고 백일공부(白日工夫)에 임(臨)하시나라.
53. 이때 상우(商雨)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너는 곧 황새마을로 가서 네가 본대로 이 소식(消息)을 전(傳)하되 나의 일은 모두 천기(天機)니 외인(外人)에게는 누설(漏洩)하지 말도록 할 것이며 도인(道人)들을 독려(督勵)하여 포덕(布德)에 더욱 힘쓰도록 하라.
이곳에는 누구의 내왕(來往)도 금(禁)하되 너는 오일(日)에 한 번씩(番式)와서 경과(經過)를 보고(報告)하고 명령(命令)을 받아갈 것이며 상식(商植)을 이곳으로 보내어 나를 시봉(侍奉)하게 하라.』하시므로 상우(商雨)가 봉명(奉命)을 받들고 시행(施行)하니라.
54. 상우(商雨)가 본소(本所)와 천서(天書)의 소식(消息)을 알리고 고명(誥命)을 전(傳)하니 가족(家族)과 도인(道人)들의 감격(感激)을 이루 형언(形言)할 수 없었으며 포덕(布德)이 날로 늘어서서 황새마을에는 도인(道人)들이 내왕(來往)으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니라
상우(商雨)가 명령(命令)대로 오일(五日)만에 본소(本所)에 가서 상제(上帝)께 배알(拜謁)하고 찾아뵙고 황새마을의 경과(經過)와 시국사(時局事)를 보고(報告)하니『너희들은 오직 공부(工夫)와 포덕(布德)에만 전념(專念)하라.』하시고 더 말씀이 없으시니라.
55. 이월(二月) 삼일(三日)에 상우(商雨)가 다시 본소(本所)에 가니 상제(上帝)께서 하명(下命)하시기를『이번(番)에 이 날 전역(全域)에 걸친 독립만세운동(獨立萬歲運動)은 이미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짜놓으신 도수(度數)에 의(依)함이며 내가 이제 공부(工夫)로써 결정(決定)함이니 도장(道丈)과 숙부(叔父)께 말씀드려 전(全) 도인(道人)이 이 운동(運動)에 적극 (積極)참여(參與)하도록 하라. 또 너는 속(速)히 안면도(安眠島)에 가서 그곳 도인(道人)들에게 나의 소식(消息)과 명령(命令)을 전달(傳達)하여 포덕(布德)에 더욱 진력(盡力)하는 동시 (同時) 거사(擧事)에 참여(參與)하도록 하고 그곳에 남은 가족(家族)은 황새 마을로 이사(移徙)하되 가산(家産)은 정리(整理)하여 황새마을에 대토(代土)하도록 하라.』하시니라.
안면도(安眠島) 가족(家族)이 이사(移徙)할 때 삼일운동(三一運動)을 제압(制壓)하려는 왜경(倭警)의 단속(團束)으로 무수(無數)한 고난(苦難)을 겪었으나 낭패(狼狽)는 없으니라.
56. 이때 도인(道人)들은 거국적(擧國的)으로 궐기(蹶起)한 독립만세운동(獨立萬歲運動)에 가담(加담) 여부(與否)를 주저(躊躇)하던 차(次)에 상우(商雨)의 전령(傳令)을 받고 사기 충천(士氣 衝天)하여 왜경(倭警)의 탄압(彈壓)에도 불구(不拘)하고 적극(積極) 참여(參與)하니라.
혹(或)은 지방(地方)에서 집단행사를 주관하기도 하고 혹은 중앙(中央)과의 연락(連絡)을 취(取)하기도 하여 그 수(數)가 만(萬)이 넘었으나 다행(多幸)히 왜경(倭警)에게 해(害)를 입은 도인(道人)은 없으니라.
57. 오월(五月) 초(初)에 상제(上帝)께서 본소(本所)에서 백일공부(白日工夫)를 마치시고 고모(姑母)에게 말씀하시기를『제가 이번(番)에 공부(工夫)를 무사(無事)히 성취(成就)함은 부인(夫人)의 공덕(功德)이옵니다. 저는 이번(番) 공부(工夫)로써 천서(天書)의 진리(眞理)를 체득하온 바 이제 진주(眞主)로서 구천(九天)의 도수(度數)에 따른 대도(大道)를 선포(宣布)하여야 할 방책(方策)이 확립(確立)되었습니다.
부인(夫人)께서는 앞으로도 상제유업(上帝遺業)을 받들던 성(誠) 경(敬) 신(信)으로써 도(道)의 일을 계속(繼續) 추원(推媛)하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대사(大事)를 위(爲)하여 가족(家族)들은 황새마을로 이사(移徙)하여 도인(道人)들과 더불어 생활(生活)하심이 좋으리이다.』하시니라.
고모(姑母)께서도 흔연(欣然)히 동의(同意)하시고 그대로 시행(施行)하여 이때부터 평생(平生)토록 창도사업(創道事業)을 보좌(補佐)하시니 고모(姑母)의 도호(道號)는 선덕부인(宣德夫人)이시며 도중고모(道中姑母)로 존칭(尊稱)하니라.
58. 상제(上帝)께서 황새마을로 환어(還御)하셔서 도인(道人)들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내가 본소(本所)와 천서(天書)를 찾아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의 도통(道統)을 봉승(奉承) 받들어 잇고 백일공부(白日工夫)를 마침으로써 상제(上帝)께서 짜놓으신 도수(度數)에 따른 나의 할 일이 확정(確定)되었으니 그대들은 내가 하는 일이 곧 상제(上帝)의 일임을 믿고 따를지니라. 상제(上帝)님의 유족(遺族)은 이곳에 거처(居處)를 마련하여 편(便)히 모시도록 하라.
나는 다시 조용한 곳에 가서 공부(工夫)하며 도수(度數)를 보려 하니 상우(商雨)는 자주와서 영(令)을 받아가라.』하시고 청도리(靑道里) 구성산(九成山)의 학선암(學仙庵) 설석에 공부(工夫)하실 곳을 정하시니 조주일(曺周一)이 시봉(侍奉)하고 상우(商雨)는 오일(五日)에 한번씩 찾아뵈니라.
59. 윤칠월(閏七月) 그믐에 상제(上帝)께서 학선암(學仙庵)에서 백일공부(白日工夫)를 마치시고 환어(還御)하시니 황새마을의 집은 많은 도인(道人)들로 협소(狹小)할 뿐만 아니라 동네의 가운데 있어서 공부(工夫)하시기에 부적(不適)합하므로 감곡면(甘谷面) 통석리(通石里) 통사동(通事洞)의 조용한 이씨재실(李氏齋室)인 영모재(永慕齋)를 얻으셔서 가족 일부를 이사시키시고 공부(工夫)하실 곳을 정하시니 상우(商雨)와 주일(周一) 등(等)이 시봉(侍奉)하였으며 재실주인(齋室主人) 이준세(李俊世)도 입도(入道)하여 모시니라.
60. 상제(上帝)께서 하시는 공부(工夫)는 실내(室內)에서 독좌(獨坐) 수행(修行)하시며 시봉(侍奉)들이 문(門) 밖에서 교대(交代)로 수직(守直)하며 외인(外人)의 접근(接近)을 일체(一切) 금(禁)하시므로 누구도 그 내용(內容)을 알 수 없으니라.
다만 이십사절후(二十四節候)에는 전수(奠需)를 장만하게 하셔서 공부실(工夫室)에서 입절시각(入節 時刻)을 기(期)하여 치성(致誠)을 올리시며 여러 도인(道人)을 참례(參禮)시키시니라.
61. 팔월(八月) 초순(初旬)에 상우(商雨)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미구(未久)에 들어오는 큰 도수(度數)에는 도(道)의 심복(心腹)이 될 천하장사(天下壯士) 몇 사람이 있어야 하니 너는 도장(道丈)께 가서 사람을 구하는 일을 여쭈어라.』하시므로 상우(商雨)가 황새마을에 가서 그대로 여쭈니라. 도장(道丈)께서는 왕년(往年)에 만주(滿洲)에서 독립운동(獨立運動)하실 때의 동지(同志)들을 통(通)하여 구문(求文)하신 끝에 함경도(咸鏡道) 백두산(白頭山) 산중(山中)까지 가셔서 독립투사(獨立鬪士) 최승오(崔勝五), 김계철(金啓澈)을 월여(月餘)에 데려오시니라.
62. 최(崔) 김(金) 양인(兩人)은 힘이 세고 몸이 날랜 장사(壯士)로서 산중(山中)에서 활약(活躍)하더니 도장(道丈)의 청탁(請託)으로 통사동(通事洞)에 와서 상제(上帝)께 뵈니라.
상제(上帝)께서는 십여일(十餘日)을 매일(每日) 호궤(犒饋)만 시키실 뿐 할 일을 하명(下命)하지 않으시므로 그들은 궁금도 하거니와 송구(悚懼)하여 명령(命令)만을 기다리는데 솟아오르는 힘을 억제(抑制)하지 못하여 둘이서 힘겨루기를 하면서 소일(消日)하니라.
63. 구월(九月) 십팔일(十八日) 아침에 구천상제(九天上帝) 강세(降世)일 치성준비차(致誠準備次) 가족(家族)과 도인(道人)들이 통사동(通事洞) 공부처(工夫處)에 모이니 상제(上帝)께서 치성준비(致誠準備)를 중지(中止)시키시고 도장(道丈)을 위시(爲始)한 전 가족을 공부실(工夫室)에 모이게 하셔서 공석(公席)을 설(設)하신 다음 말씀하시기를『이 말씀은 천기(天機)에 속(屬)하여 부모(父母) 형제(兄弟間)간이라도 기휘(忌諱)하여야 되는 천지대사(天地大事)이므로 누설(漏洩)하면 아니 되는 일임을 명심(銘心)하시고 들어주시기를 먼저 사뢰옵니다. 저는 십오세(十五歲)에 봉천명(奉天命)하고 도강이서(渡江而西)하여 정진주지도수(定眞主之度數) 하였사오며 그 후(後) 만(萬) 십년(十年)의 공부(工夫)로써 무극대도(无極大道)의 진주(眞主)가 갖추어야 할 삼천중(三天中)의 이천(二天)은 이미 받들었사오니 이번(番)에 천보(天寶)만 받들면 되옵니다. 사사(私事)으로는 어른들께 송구(悚懼)하오나 이러한 대운대사(大運大事)의 성취(成就)를 위(爲)한 공사(公事)에는 인세의 척분(戚分)에 구애(拘碍)될 수 없사오니 해량하옵소서.』하시니라. 이때 참예(參詣)석한 전(全) 가족(家族)은 대도(大道)의 지중(至重)함을 다시 느끼고 숙연(肅然)히 심중(心中)에 서맹(誓盟)하니라.
64. 가족(家族)들이 공부실(工夫室)에서 나간 후(後)에 서산공(曙山公)을 위시(爲始)하여 권태로(權泰魯), 권영문(權寧文), 이정두(李正斗), 김사일(金思日), 박붕래(朴朋來)와 두 장사(壯士)를 입시(入侍)하게 하시고 하명(下命)하시기를『이제 두 장사(壯士)가 기다리던 일을 할 때가 되었노라. 자상(仔詳)한 일은 당지(當地)에 가서 지시(指示)할 것이로되 그대들이 내 영(令)에 척신 준행(擲身 遵行)할 것을 다짐하느뇨』하셔서 서약(誓約)을 받으시니라.
이어 일배주(一杯酒)를 하사(下賜)하시며 『내가 지금(只今) 그대들의 도움을 얻고자 하는 일은 천지 대도(天地 大道)의 도수(度數)에 맞추어 천보(天寶)를 받드는 일이니라.』하신 다음 일행(一行)을 거느리시고 통사동(通事洞)을 출어(出御)하시며 담화(談話)와 끽연(喫煙)을 금(禁)하시니라.
65. 이날 술시경(戌時頃)에 정읍(井邑) 대흥리(大興里)에 임어(臨御)하셔서 보천교(普天敎) 도장(道場) 건너편(便) 언덕 위 송림(松林)속에 자리를 정(定)하시니라.
이때 보천교(普天敎)에서는 교도(敎徒) 수백명(數白名)이 모여 상제(上帝)강세일(降世日) 치성준비(致誠準備)로 넓은 도장(道場) 곳곳에 횃불을 밝혔으므로 일대(一帶)가 주변이 대낮 같이 밝아 건물(建物)과 통로(通路)의 실상(實狀)은 물론(勿論) 교도(敎徒)들의 동태(動態)도 낱낱이 살필 수 있으니라.
66. 상제(上帝)께서 보천교 도장(普天敎 道場)을 가리키시며 일동(一同)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우리는 오늘 밤 보천교(普天敎)의 치성(致誠)이 끝난 후(後)에 저들이 숨기고 있는 구천상제(九天上帝)의 둔궤(遁櫃)를 통사동(通事洞) 공부처(工夫處)로 모셔가야 하느니라.』하시고 각자(各自)의 행동방법(行動方法)을 상교(相敎)하시니라.
67. 자정(子正)이 지나 일동(一同)을 출발(出發)시키시니 승오(勝五)가 연목(椽木)크기의 소나무 한 그루를 뽑아 곤봉(棍棒)을 만들어 앞장서므로 상제(上帝)께서『사람을 상(傷)하게 하여서는 절대(絶對)로 아니되느니라.』하시니라.
일행(一行)이 보천교(普天敎) 도장(道場)에 도착하여 본당(本堂)까지 들어가는 동안 보천교도(普天敎徒)들이 각(各) 방(房)에 많이 있었으나 한 사람도 내다보지 않으니라.
68. 상제(上帝)께서 각(各) 방문(房門) 앞마다 교도(敎徒)들의 신발이 많음을 보시고 승오(勝五)로 하여금 곤봉(棍棒)으로 본당(本堂)마루를 내리쳐서 교도(敎徒)들을 깨우게 하신 다음 우뢰(雨雷)같은 음성으로『천명(天命)에 의(依)하여 천보(天寶)를 모셔가니 순순(順順)히 응하라. 만약(萬若) 거역(拒逆)하는 자는 천벌(天罰)을 받으리라.』하시니 교도(敎徒)들은 갑작스런 일에 겁이 나서 꼼짝도 못하니라.
상제(上帝)께서 각(各) 방(房)을 찾아보게 하셨으나 둔궤(遁櫃)를 찾지 못하므로 친(親)히 한 방(房)에 임어(臨御)하시니라.
69. 상제(上帝)께서 그 방에 병풍(屛風)으로 가려놓은 둔궤(遁櫃)와 약장(藥欌)을 발견(發見) 하시고 두 장사(壯士)로 하여금 대청(大廳)으로 들어내게 하시고 출어(出御)하시며 승오(勝五)에게 명(命)하셔서 약장(藥欌)은 그대로 두고 둔궤(遁櫃)만 지고 나가게 하신 다음 일행(一行)을 거느려 회정(回程)하시며 계철(啓澈)에게 대문(大門)을 지키고 서서 보천교도(普天敎徒)의 추적(追跡)을 막게 하시니라.
70 이때 보천교도(普天敎徒)들은 치성(致誠)을 마치고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가 혼비백산(魂飛魄散)하고 있는데 『둔궤(遁櫃) 가져간다』하는 누구의 고함(高喊) 소리에 정신(精神)을 차리고 문(門)을 열어보니 장한(壯漢)이 사람이 둔궤(遁櫃)를 지고 대문(大門)을 지키고 서서 추적(追跡)을 막음으로 더 쫓지 못하고 장한(壯漢)들이 대문(大門)밖으로 나간 다음에야 일제히 일어나 벌떼같이 나서서 추적(追跡)하니라.
71. 승오(勝五)는 둔궤(遁櫃)를 지고 뛰어가면서 추격자(追擊者)들을 덤비는 대로 밀어내서 따 돌렸으나 그 수(數)가 너무 많아 혼자서는 감당(堪當)하기 어려우니라.
이때 계철(啓澈)이 승오(勝五)를 도와서 산(山)길로 들어가서 숲속에 둔궤(遁櫃)를 안치(安置)하고 전히 두고 되돌아오니 일행(一行)의 행방(行方)은 묘연(杳然)히 찾을 길이 없고 온 들판이 추격자(追擊者) 일색(一色)하는 사람들이고 달빛과 함께 그들의 횃불이 밝아 더 지체(遲滯) 할 수 없으니라.
다시 산으로 가서 둔궤(遁櫃)를 지고 걸음을 재촉하여 날이샐 무렵 통사동(通事洞) 공부처(工夫處)로 돌아오니라.
72. 공부처(工夫處)에서는 도장(道丈)을 위시(爲始)하여 가족(家族)과 도인(道人)들이 밤을 세워 일행(一行)을 기다리더니 두 장사(壯士)만 돌아와서 경과사(經過事)를 말하되 상제(上帝)의 안부(安否)는 모른다 하니라.
도장(道丈)께서 크게 걱정하시며 장사(壯士)들에게『혹여(或如) 그 신상(身上)에 변고(變故)가 생김은 아니냐 둔궤(遁櫃)는 있고 주인(主人)이 없으면 어찌 하느냐』하시니라.
진시경(辰時頃)까지 환행(還幸)하지 않으시므로 사람들을 거느리고 몸소 찾아 나서셔서 태인(泰仁)으로 가는 대로(大路)에 이르셨을때 서산공(曙山公) 일행(一行)만 돌아오니라.
그들 역시(亦是) 밤새도록 상제(上帝)을 찾다가 환어(還御) 돌아오신 줄 알고 돌아오는 길이라 하므로 일행(一行)은 다시 합류(合流)하여 정읍방면(井邑方面)으로 상제(上帝)을 찾아 나서니라.
73. 이에 앞서 상제(上帝)께서는 계철(啓澈)을 승오(勝五)에게 보내시고 길 옆에 입어(立御)하셨으나 추격자(追擊者)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가니라. 이에 환하게 보이는 산로(山路)로 행행(行幸)하시는데 마침 산록(山麓)에 한 재실(齋室)이 있으므로 임어(臨御)하시니 그 곳으로 가시니 주인(主人)이 환대(歡待)하니라. 그 밤을 그곳에서 쉬신 후(後)에 통사동(通事洞)으로 돌아오시다가 태인(泰仁) 근처(近處)에서 도장 일행(道丈 一行)을 만나 함께 무사(無事)히 환행(還幸)하셔서 돌아오셔서『이 실(實)로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의 덕화(德化)요, 도인(道人)들의 정성(精誠)이니라.』하시며 일행(一行)의 노고(老姑)를 치하(致賀)하시니라.
74. 선덕부인(先德夫人)께서 둔궤(遁櫃)를 보고 감격(感激)하셔서 한 식경(食頃)이나 체읍(涕泣) 『십년간(十年間)의 삼천(三遷)끝에 진주(眞主)에게 돌아왔으니 천행(天幸)이로다.』하시고 둔궤(遁櫃)의 내력(來歷)을 설명(說明)하시니라. 『이 둔궤(遁櫃)는 구천상제(九天上帝)님께서 화천(化天) 전년(前年) 사월(四月)에 동곡약방(銅谷藥房)을 차리실 때 약장(藥欌)과 함께 조성(造成)하셔서 "이 궤(櫃) 속에 번개가 들어야 한다." 하시고, 또 "이는 나의 도지(道旨)와 도통(道統)을 숨겼으므로 둔궤(遁櫃)라 하느니라." 하시며 약방(藥房)에 비치(備置)하시고 공사(公事)를 보신 천보(天寶)니라.
화천(化天)하신 후(後)에 김수부(金首婦)가 간수하더니 고수부(高首婦)가 교단(敎團)을 세울 때 옮겨갔는데 그가 떠나자 경석(京石)이 숨겼던 것이니라.
그 문(門)에는 상제(上帝)께서 손수 자물쇠를 채우시고 그 열쇠를 숨기셨으므로 지금(至今)까지 누구도 열 수 없으니라.』
75. 둔궤(遁櫃)의 크기는 가로 사척(四尺) 높이 삼척(三尺) 폭(幅) 일척(一尺) 오촌(五寸)이며 오푼(五分) 두께의 오동목판(梧桐木板)으로 짜서 그 겉에는 옻칠(㓼)을 하고 모양(模樣)은 함(函)과 같으나 장롱(欌籠)과 같이 문(門)을 앞으로 열게 되어 있으니라.
선덕부인(先德夫人)께서 그 문(門)에 채워진 자물쇠가 한번(番)도 열린 흔적(痕迹)이 없음을 확인(確認)하시고 기뻐하시니라.
76. 이러한 설명(說明)을 들은 가족(家族)과 도인(道人)들은 그 신비(神秘)함에 새삼 감탄하였으며 약장(藥欌)까지 모셔오지 못함을 서운히 생각하고 더욱이 장사(壯士)들은 상제(上帝)의 후대(厚待)을 받았으면서도 이 일을 아울러 완수(完遂)하지 못한 자책(自責)으로 고두사죄(叩頭謝罪)하니라. 상제(上帝)께서 말씀하시기를『둔궤(遁櫃)만으로도 족히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의 도수(度數)를 받들 수 있으니 너무 염려(念慮)하지 말라. 만일(萬一) 꼭 필요(必要)하다면 왜 그대로 두라 하였으랴 그대들은 앞으로 한 번(番)더 할 일이 있으니 그때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하시니라.
77. 상제(上帝)께서 공부실(工夫室) 상좌(上座)에 둔궤(遁櫃)를 안치(安置)하시고 그 날 저녁에 대치성(大致誠)을 올리신 다음 하교(下敎)하시기를『내가 그대들의 도움으로 천장지보(天藏之寶)를 잘 모시게 되었는 바 이는 구천상제(九天上帝)님께서 짜놓으신 삼천(三天)의 도수(度數)로서 내가 봉행(奉行)하여야 할 큰 도수(度數) 중(中)의 하나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해야 할 공사(公事)며 또 나 아니면 못할 일이니라. 만약(萬若) 도수(度數)가 아니라면 모셔올 필요(必要)도 없지마는 다른 때 그들의 잠든 틈에 쉽게 모셔와도 될 일을 굳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때에 잠자는 사람들을 깨워알 리기까지 할 이유(理由)가 어디 있으리요.
그러므로 후일(後日) 오늘의 일에 대(對)하여 시비(是非)를 일으키는 자(者)는 도수(度數)와 공사(公事)를 모르는 사람이니라.』하시고 이날부터 둔궤도수공부(遁櫃度數工夫)를 시작하 시니라.
78. 둔궤도수공부(遁櫃度數工夫) 일개월(一個月)이 되던 날 상우(商雨)와 두 장사(壯士)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그대들은 오늘 둔궤(遁櫃)를 혼수(婚需) 짐처럼 꾸며 지고 통사동(通士洞)을 출발(出發)하여 임실(任實) 장수(長水)를 거쳐 산청(山淸) 의령(宜寧) 반구정(伴鷗亭)까지 으로 옮기되 소로(小路)로 돌아 오일(五日)만에 도착(到着)하니 상제(上帝)께서는 주일(周一), 태로(泰魯) 등(等)을 거느리시고 먼저 임어(臨御)하시니라.
79. 반구정(伴鷗亭)은 상제(上帝)의 십삼대조(十三代祖) 휘 방(房) 호(號) 두암공(斗巖公)이 임진왜란(壬辰倭亂)에 곽재우(郭再우)장군(將軍) 등(等)과 창녕(昌寧)의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의거(義擧)하여 전공(戰功)을 세우시고 정란(靖亂) 후(後) 만년(晩年)에 낙동강(洛東江)과 정암강(鼎岩江)이 합류(合流)하는 도흥진(道興津) 옆 층암절벽(層巖絶壁) 위에 지은 정사(精舍)로서 공(公)이 시서(詩書) 글을 즐기며 때로 곽재우(郭再우), 장현광(張顯光) 등(等) 고우(故友)와 함께 오래 사귄 벗들과 함께 경(經)를 강론(講論)하고 시(詩)를 읊으시던 곳이며 공(公)의 묘사재실(墓祀齋室)이니라.
배후(背後)와 좌우(左右)에는 용화산(龍華山) 산악(山岳)이 병풍(屛風)처럼 위요(圍繞)하고 수목(樹木)이 울창(鬱蒼)하며 앞에는 절벽(絶壁)아래 낙동강(洛東江)이 흐르고 강(江) 건너에는 남지(南旨)에서 수산(守山)으로 이어지는 강변평야(江邊平野)와 이를 둥글게 에워싼 종남산(終南山), 화악산(華岳山), 화왕산(華旺山)의 전망(展望)이 절경(絶景)을 이룬 곳이며 인적이 끓겨 유적(幽寂)한 곳이니라.
80 상제(上帝)께서 반구정(伴鷗亭) 공부실(工夫室) 상좌(上座)에 둔궤(遁櫃)를 모시고 공부설석(工夫設席)하신 다음 대치성(大致誠)을 올리시니라.
두 장사(壯士)에게 그동안의 노고(勞苦)를 치하(致賀)하시며 위로금(慰勞金)을 하사(下賜)하시니 그들은『진인(眞人)의 공사(公事)에 만분지일(萬分之一)이라도 도와드림이 일생(一生)의 영광(榮光)이옵고 보수(報酬)를 바람은 아니옵나이다. 』 하고 고사(固辭)하며 그 중(中) 여비(旅費)만 받아가지고 떠나니라.
상제(上帝)께서『그대들의 공로(功勞)는 후세(後世)에 길이 남으리라.』하시며 못내 아쉬워하시니라.
81. 이날부터 백일간(百日間)을 낮에는 반구정(伴鷗亭) 공부실(工夫室)에서 수도(修道)하시고 밤에는 절벽(絶壁) 아래 낙동강(洛東江)이 흐르고 있는 강변(江邊) 백사장(白沙場)에서 검무공부(劒舞工夫)를 하시는데 그때마다 짙은 안개가 몽몽(濛濛)하게 일어나니라.
상제(上帝)께서는 이 기간설한몽(其間雪寒風)이 몰아치는 혹심(酷甚)한 고초(苦楚)를 겪으시니라.
82. 상제(上帝)께서 백일공부(白日工夫)를 마치시던 날『이제 둔궤도수(屯櫃度數)를 잘 마쳤노라.』 하시며 시종(侍從)들의 노고(老姑)를 치하(致賀)하신 다음 상우(商雨)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이 둔궤문(屯櫃文)에 채워진 자물쇠를 열어야 하리니 열쇠를 만들도록 하라.』하시니라.
상우(商雨)가 칠원읍(七原邑)에 가서 열쇠장수를 데려와 자물쇠에 맞추어 열쇠를 만들게 하 여 열려고 하였으나 열리지 않으니라.
다시 여러 개(個)를 만들어 수일간(數日間) 수십차(數十次) 시험(侍險)하였으나 끝내 열리지 않음을 보시고『그만두고 돌려보내라.』하시니라.
83. 이튿날은 도기(道紀) 십이년(十二年) 경신(庚申) 이월(二月) 십칠일(十七日) 양력(陽曆) 사월(四月) 오일(五日) 청명절(淸明節)이니라.
상제(上帝)께서 입절시각(立節時刻)인 사시(巳時)에 공부실(工夫室)에서 절후치성(節候致誠)을 올리신 후(後) 둔궤(屯櫃) 앞에 따로 법수(法水)를 설상(設床) 봉정(奉呈)하시고 시종(侍從)들을 정렬(整列) 법좌(法座)하게 하신다음 친(親)히 분향(焚香) 뇌성벽력(雷聲霹靂) 사배(四拜)하시고 일동(一同)에게 태을주(太乙呪)를 연송(連誦)하게 하시니라.
공부(工夫)하실 때 쓰시는 주(籌)대를 열쇠구멍에 끼우시는 순간(瞬間)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일어나며 천지(天地)가 진동(震動)하고 실내(室內)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며 자물쇠가 스스로 열리니라.
일동(一同)이 신이(神異)하게 생각할 때 상제(上帝)께서 둔궤(屯櫃)의 문(門)을 여시니 또 한번(番) 뇌전(雷電)이 일고 궤(櫃) 안에서 섬광(閃光)이 번쩍이니라.
84. 상제(上帝)께서 둔궤(屯櫃)의 문(門)을 열어놓으시고 사배(四拜)를 올리시므로 일동(一同)도 따라 올리고 내부(內部)를 살피니 그 안에는 양피(羊皮) 한 장(張)과 반개(半開)한 국화(國華) 한 송이가 들어 있으니라.
내부(內部)의 정면(正面) 중앙(中央)에는『오강록(烏江錄)』, 그 좌측(左側)에『설문(舌門)』, 우측(右側)에 『반구제수(半口齊水)』, 좌면(左面)에는『천문지리풍운조화(天文地理風雲造化)』, 우면(右面)에는『팔문둔갑지혜용력(八門遁甲智慧勇力)』이라는 화각서가 있고 정면(正面)의 문자(文字) 주위(周圍)에는 주사(朱砂)로 이십점(二十點)이 선명(鮮明)하게 찍혀 있으니라.
85. 상제(上帝)께서 둔궤(屯櫃) 내부(內部)를 상세(詳細)히 감(鑑)보신 다음 말씀하시기를『과시(果是) 천보(天寶)로다. 수운(水雲)의 거년(去年) 경신(庚申) 사월(四月) 초오일(初五日)은 음력(陰曆)이로되 나의 금년(今年) 경신(庚申) 사월(四月) 오일(五日)은 양력(陽曆)이니 음양합덕(陰陽合德)이며, 태극도수(太極度數)가 분명하도다.』하시며 감탄(感歎)하시니라.
다시 문(門)을 닫으신 다음 자물쇠를 채우셔서 전(前)과 같이 안치(安置)하시며『이제 너희들이 본 바와 같이 내가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의 도수(度數)를 음양합덕(陰陽合德)으로 하나하나 잘 풀어가고 있으니 흔쾌(欣快)한 바니라.
다만, 너희들은 조심(操心)하여 천기(天機)를 누설(漏洩)하지 말지니라.』하시니라.
86. 이해 삼월(三月) 초순(初旬)에 통사동(通士洞)으로 환어(還御)하셔서 다시 공부(工夫)하시다가 상우(商雨)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내가 금년(今年)에 마쳐야 할 큰 도수(度數)가 남아 있으니 이번(番)에는 검무도수(劍舞度數)니라. 장단검(長短劒) 석자루가 필요(必要)하되 장검(長劒)은 칼날이 오척(五尺)이요, 중검(中劒)은 삼척(三尺), 단검(短劒) 은 척반(尺半) 이면 되느니라. 그러나 장검(長劒)은 옛날 이충무공(李忠武公)이 사용(使用)하던 칼을 빌어 써도 될 것이니 그 일은 도장(道丈)께 말씀드려 충무공(忠武公)의 종손(宗孫) 이종옥(李種玉)에게 청탁(請託)하도록 여쭈고 만약(萬若) 불여의(不如意)치 않으면 그 도본(圖本)을 떠서 석자루를 모두 새로이 만들어야 되느니라.』하시니라.
상우(商雨)가 도장(道丈)께 여쭈니 몸소 아산(牙山)에 가셔서 만주(滿洲)서 독립운동(獨立運動) 당시(當時) 교분(交分)이 두터우신 종옥(種玉)을 만나 사유(事由)를 말씀하였으나 왜경(倭警)의 감시(監視)가 심(甚)하여 빌어오실 수 없으므로 그 도본(圖本)을 떠오셔서 만들기로 하시니 상제(上帝)께서 그 방법(方法)을 상우(商雨)에게 가르치시니라.
87. 상우(商雨)가 봉명(奉命)하고 안면도(安眠島)에 가서 도공(刀工) 성기춘(成寄春)에게 도본(圖本)을 주어 석자루를 만들도록 하니라.
기춘(寄春)은 상우(商雨)가 시키는대로 인부(人夫) 삼인(三人)을 데리고 철재(鐵材)와 도구(道具)를 준비(準備)하여 밀양(密陽) 운문산(雲門山)의 천황봉(天皇奉) 아래에 인적(人跡)이 없는 곳을 찾아서 비밀리(秘密裏)에 야장간(冶匠間)을 차리고 칼을 치기 만들기 시작(始作)하니라.
상제(上帝)께서는 미리 신산공(晨山公)에게 총감독(總監督)을 맡기시고 상우(商雨)에게는 한양(漢陽)에 가서 만국 지도(萬國 地圖) 오십장(五十張)을 사다가 쇠를 달굴 때마다 한 장씩 (張式)풀무 불 속에 소화(燒火)하게 하시더니 오십일(五十日)만인 오월(五月) 단오절(端午節)에 칼 석자루가 완성(完成)되니라.
이를 반구정(伴鷗亭)으로 옮겨 미리 오신 상제(上帝)께 올리니 기춘(奇春)과 인부(人夫)들에게 노고(勞苦)를 치하(致賀)하시고 위로금(慰勞金)을 하사(下賜)하시니라.
88. 상제(上帝)께서 반구정(伴鷗亭)에서 대치성(大致誠)을 올리신 다음 그 날부터 지난 겨울과 같이 낮에는 공부실(工夫室)에서 수도(修道)하시고 밤에는 검무도수(劍舞度數)를 보시니라. 강변(江邊)의 백사장(白沙場)에 단(壇)을 모으게 하시고 사방(四方)에 등(等)불을 밝히신 다음 칼 석자루 를 휴대(携帶)하시고 단상(壇上)에 임(臨)하셔서 검무(劒舞)를 하시니 전(前)보다 더한 운무(雲霧)가 일어 지척(咫尺)을 분간(分揀)할 수 없으므로 시종(侍從)들은 도수(度數)를 보시는 내용(內容)은 알 수 없고 다만 짙은 운무(雲霧)속에서 칼 부딪치는 소리를 간간(間間)이 들을 뿐이니라.
89. 백일간(百日間)의 검무도수(劒舞度數)를 마치시고 팔월(八月) 중순(中旬)에 다시 통사동(通士洞)으로 환어(還御)하실때 칼은 가져오시고 둔궤(屯櫃)는 그 곳에 두고 오시니라.
그 후(後)에 주일(周一)이 상제(上帝)를 배신(背信)하고 몰래 반구정(伴鷗亭)에 가서 둔궤(屯櫃)를 가지고 진주(晉州) 모처(某處)로 도망(逃亡)하여 사술(詐術)로 신도(信徒)를 모으다가 일년(一年)만에 죽으니라.
상우(商雨)가 이 소식(消息)을 듣고 상제(上帝)께 둔궤(遁櫃)를 찾고자 여쭈니『둔궤(遁櫃)는 이미 도수(度數)에 따라 쓰여 나의 일을 다 마쳤으니 그로써 족(足)하고 둔궤(遁櫃)라는 둔자(遁字)는 또한 도망(逃亡) 둔자(遁字)로서 도망자(逃亡者)의 소유(所有)가 됨은 필연(必然)이며 이제는 한낱 궤(櫃)에 불과(不過)하니라. 또 비일주일(非一周一)뿐만 아니라 후일(後日)에도 이러한 배신(背信) 난법자(亂法者)가 나타나 세상(世上)을 현혹(眩惑)하는 일이 있으리라.』하시며 찾지 말게 하시니라.
90. 이해 추석(秋夕)에 상제(上帝)께서 통사동(通士洞) 공부처(工夫處)에서 명절치성(名節致誠)을 올리시고 상우(商雨)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이번(番) 도수(度數)에는 벽조목(霹棗木)이 있어야 하니 너는 도장(道丈)께 구(求)하여 주시도록 여쭈라.』하시니라.
상우(商雨)가 명(命)대로 하니 도장(道丈)께서『그렇지 않아도 어젯밤 꿈에 밀양(密陽) 모처(某處)에 어느 곳에 산 다는 노인(老人)이 나타나서 "저의 집에 십여년(十餘年)된 벽조목(霹棗木)이 있사오니 쓰실 일이 있사 오면 올리겠나이다" 하므로 이상(異常)히 여기던 차(次)니라.』하시고 즉일(卽日) 밀양(密陽)으로 가셔서 수문(搜聞)하신 끝에 밀양(密陽)의 김동식(金桐植)으로 부터 구(求)하여 오시니라.
이는 그의 부친(父親)이 생존시(生存時)에 구(求)하여 두고 유언(遺言)하기를『이것은 범인(凡人)이 함부로 쓸 것이 아니라 신인(神人)이라야 사용(使用)하리니 발설(發說)하지 말고 비장(秘藏)하였다가 후일(後日) 현몽(現夢)을 듣고 오시는 분에게 전(傳)하라.』하여 지금(至今)까지 십여년간(十餘年間) 보관中(保管中)이라 하며 값도 받지 않고 드림이니라.
91. 상제(上帝)께서 조각공(彫刻工)을 불러 비밀리(비밀리)에 벽조목(壁棗木)을 방형(方形)네모진 형태로 깎고 면(面)마다 이양(異樣)의다른 모양의 문자(文字)를 음양각(陰陽刻)으로 새기게 하셔서 청홍색(靑紅色) 비단(緋緞)주머니 속에 간수하시니라.
공부(工夫)하실 때는 인면(印面)에 주사(朱砂)를 묻혀 백지(白紙)에 찍어서 소화(燒火)하시고출어(出御)하실 때는 그 인냥(仁灢)을 허리에 차시니라.
92. 이해 구월(九月) 말경(末頃) 상우(商雨)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이번(番)에는 단도수(壇度數)니라. 이 도수(度數)는 인적(人跡)이 멀고 계견성(鷄犬聲)이 해변(海邊)이라야 하니 너의 향리(鄕里)에 가서 적지(適地)를 구(求)하라.』하시니라.
상우(商雨)가 안면도(安眠島)에 가서 알아보니 창기리 동단(倉基里 東端) 오리허(五里許)쯤 되는 곳에 있는 철도(鐵島)가 최적(最適)이므로 돌아와 복명(復命)하니 가(可)하다 하시고 상우(商雨),상식(商植) 등(等)을 거느리고 행행(行幸)하셔서 군산(群山)의 광천(廣川)을 거쳐서 오일만(五日)만에 안면도(安眠島)에 임어(臨御)하시니라.
93. 십일월(十日月) 초삼일(初三日) 창기리(倉基里) 도인(道人) 김창규(金昌奎)의 집에 행재(行在)하시며 철도(鐵島)에는 하나 뿐인 박영호(朴英鎬)의 집에 공부처(工夫處)를 정(定)하시고 앞의 밭에 종횡(縱橫) 육간(六間)의 정방형(正方形)으로 높이 삼척(三尺)의 평탄(平坦)한 토 단(土壇)을 만들게 하시니라. 단(檀)위에 이십사방위(二十四方位)를 설(設)하여 매방위(每方位)마다 십삼척(十三尺)의 장죽(長竹)을 세우고 중앙(中央)에는 사방(四方)이 삼간(三間) 높이 삼척(三尺)의 토단(土壇)을 쌓게 하시니라. 그 중심(中心)에 높이 이십일척(二十一尺)의 장죽을 삼개씩(三個式) 도합(都合) 칠십이개(七十二個)를 세우고 칠십이개(七十二個)노끈으로 연결시킨 다음 그 위에 기(旗)를 달게 하시니라. 기(旗)는 장(長) 일척(一尺)오촌(五寸), 폭(幅) 일척(一尺)의 백포(白布)에 주사(朱砂)로 중앙기(中央旗)에는 태극(太極) 기외(其外) 그 밖에는 용(龍)호(虎) 등(等)의 물형(物形)을 그리시고 팔괘(八卦), 십이지(十二支), 이십팔수(二十八宿) 등의 문자(文字)를 쓰시니라.
94. 설단(說壇)이 완료(完了)되자 공부실(工夫室)에서 대치성(大致誠)을 올리시고 그날부터 단도수(壇度數)를 보시니라. 낮에는 공부실(工夫室)에서 수도(修道)하시고 밤에는 단(壇) 위에서 반구정(伴鷗亭)에서와 같이 검무도수(劒舞度數)를 보시는데 단상(壇上)에 임어(臨御)하실때는 상식(商植)에게 장죽(長竹)마다 기(旗)를 달게 하시고 공부(工夫) 후(後)에는 거두게 하시니라.
공부(工夫)하실 때는 타인(他人)의 접근(接近)을 엄금(嚴禁)하셔서 시종(侍從)하던 상우(商雨), 상식(商植)과 그곳 도인(道人) 이수영(李壽寧), 김창규(金昌奎) 등(等)은 방문(房門)을 닫고 있었으므로 상제(上帝)께서 공부(工夫)하시는 내용(內容)을 알 수 없고 다만 우뢰(雨雷)같으신 용성(龍聲)과 칼 부딪는 소리만 간간(間間)이 들리니라.
95. 이때는 소대한(小大寒)이므로 눈이 많이 내렸으나 단(壇) 위에는 한 점도 쌓이지 않았으며 다른 땅은 모두 얼어도 단토(壇土)는 얼지 않을 뿐 아니라 온화(溫和)한 김이 피어오르되 질지 않으니라. 때로는 상제(上帝)의 후광(後光)이 더욱 세게 발(發)함을 보고 시종(侍從)들은 모두 신이(神異)하게 여겼으나 이 또한 누구에게도 누설(漏洩)하지 못하게 하시니라.
96. 상우(商雨)가 지난 봄에 둔궤(遁櫃)의 내부(內部)를 살피고 그 신비(神秘)에 감동(感動)한 이래(以來) 그 비의(秘意) 해득에 골몰(汨沒)하더니 연말(年末) 어느날 상제(上帝)께 오강록(烏江錄)과 설문(舌門)의 뜻을 송구(悚懼)히 앙문(仰問)하니 『오강록(烏江錄)은 나의 비결(秘訣)이고 설문(舌門)은 너희 비결(秘訣)이니 더 묻지 말라.』하시니라.
다시 감문(敢門)하기를 『양피(羊皮)는 미생(未生)의 뜻이옵고 이십사점(二十四點)은 사(四)철의 뜻이오며 반구제수(半口齊水)는 선생(先生)님의 존함(尊啣)이 분명(分明)하오나 반개국(半開菊)의 뜻은 무엇이옵나이까 하교(下敎)옵소서.』하니 『국화(菊花)는 구월(九月) 오일(五日)에 반개(半開)한다는 뜻이니라.
그러나 이런 일에 몰두(沒頭)하면 수행(修行)에 방해(妨害)되니 근신(勤愼)하고 수구여병(守口如甁)말을 조심하라.』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