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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행록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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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록(行錄) 5장 

 


1. 차문경(車文京)이 기유년 정월 二일에 술을 마시고 상제를 “역적질을 한다”고 고함을 치며 비방하니, 이 비방이 천원 병참에 전해져서 군병들이 출동하려 하니라. 이 일을 미리 상제께서 아시고 경석으로 하여금 집을 지키게 하고 바로 비룡촌(飛龍村) 차윤경의 집으로 떠나셨도다.


2. 이 일이 있기 전에 상제께서 경석에게 三일 새벽에 고사를 지내도록 하셨는데 마침 이 일이 일어났으므로 다시 경석에게 “내일 자정에 문틈을 봉하고 고기를 굽고 술병의 마개만 열고 심고하라. 이것이 곧 고사니라”고 이르시니라. 경석이 三일 새벽에 명하신 대로 고사를 끝내니 날이 밝아지는도다. 이 때 총을 맨 군병 수십 명이 몰려와서 상제를 수색하였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갔도다.


3. 상제께서 초 닷새에 동곡으로 돌아오셨도다. 수일 후에 태인으로부터 사건이 무사히 된 전말을 들으시고 가라사대 “정읍 일은 하루 공사인데 경석에게 맡겼더니 하루 아침에 안정되고 태인 일은 하루 아침 공사인데 경학에게 맡겼더니 하루에 안정되니 경석이 경학보다 훌륭하도다. 그리고 경석은 병조판서의 자격이며 경학은 위인이 직장(直腸)이라. 돌이키기 어려우나 돌이키기만 하면 선인이 되리라”고 하셨도다.


4. 상제께서 기유년 어느 날 원평 시장 김경집(金京執)의 음식점에 사관을 정하시고 오랫동안 왕래하셨도다. 그는 상제의 말씀이라 하여 주식을 청하는 사람에게 대금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고 음식을 제공하였도다. 이즈음에 청석골에 살고 있는 강팔문(姜八文)이란 자가 술과 밥을 먹고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금을 내지 않고 상제께 미루고 가니라. 팔문은 그 음식을 먹고 난 뒤부터 배가 붓기 시작하더니 사경을 헤매느니라. 이 사실을 신경수가 상제께 아뢰이니 아무 대답도 아니 하시니라. 병세가 더 위급하여졌다는 소식을 전하여 듣고 가라사대 “몹쓸 일을 하여 신명으로부터 노여움을 사서 죽게 되었으니 할 수 없노라” 하시더니 그 후 곧 그의 사망이 전하여졌도다.


5. 상제께서 하루는 대흥리에 계셨는데 안내성으로 하여금 곤봉으로 마룻장을 치라 하시며 가라사대 “이제 병고에 빠진 인류를 건지려면 일등박문이 필요하고 이등박문이 불필요하게 되었느니라” 하셨는데 그 뒤 이등박문(伊藤搏文)이 할빈역에서 안중근(安重根)의사(義士)에게 암살되었도다.


6. 기유년 二월 九일에 김자현을 데리고 김제(金堤) 내주평(內住坪) 정남기의 집에 이르시니라. 그 곳에서 상제 가라사대 “이 길은 나의 마지막 길이니 처족을 찾아보리라.” 상제께서 등불을 밝히시고 새벽까지 여러 집을 다니시고 이튿날 새벽에 수각리(水閣里) 임상옥(林相玉)의 집에 가시니라. 이 곳에서 글을 쓰고 그 종이를 가늘게 잘라 잇고 집의 뒷담에서 앞대문까지 펼치니 그 종이 길이와 대문까지의 거리가 꼭 맞는도다. 이 공사를 보시고 상제께서 그 동리에서 사는 김 문거(金文巨)에게 가셨다가 다시 만경(萬頃) 삼거리(三巨里) 주막집에 쉬고 계시는데 한 중이 앞을 지나가는지라. 상제께서 그 중을 불러 돈 세 푼을 주시는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자현에게 이르시기를 “오늘 오후에 백홍(白虹)이 관일(貫日)하리니 내가 잊을지라도 네가 꼭 살펴보도록 하라” 하시더니 오후에 그렇게 되었도다. 그리고 다음 날에 형렬이 전주로 동행하니라. 이에 앞서 상제께서 “오늘 너희가 다투면 내가 죽으리라” 이르셨도다.


7. 하루는 형렬이 상제의 명을 좇아 광찬과 갑칠에게 태을주를 여러 번 읽게 하시고 광찬의 조카 김병선(金炳善)에게 도리원서(桃李園序)를 외우게 하고 차경석. 안내성에게 동학 시천 주문을 입술과 이빨을 움직이지 않고 속으로 여러 번 외우게 하셨도다.


8. 三월에 부안 청일(淸日)사람 이치화(李致化)가 와서 상제를 섬기고 그 후 이공삼(李公三)이 와서 추종하니라. 상제께서 이치화에게 “빨리 돌아가라” 하시되 치화가 종일토록 가지 아니하니 상제께서 다시 기일을 정하여 주시며 가라사대 “빨리 돌아가서 돈 칠십 냥을 가지고 기일 내에 오라” 하시니 치화가 그제야 돌아가서 그 기일에 돈 칠십 냥을 허리에 차고 와서 상제께 올렸더니 상제께서 명하사 그 돈을 방안에 두었다가 다시 문 밖에 두고 또 싸리문 밖에 두어 일주야를 지낸 후에 들여다가 간수하시더니 그 후에 공삼을 시켜 그 돈 칠십 냥을 차경석의 집에 보내셨도다.


9. 경석이 삼월 어느 날에 공우와 윤경을 백암리 김경학의 집에 보내어 상제께 일이 무사함을 아뢰게 하였다. 그 말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내가 공사를 본 후에 경석을 시험하였으되 일을 무사히 처결하였으니 진실로 다행한 일이로다”고 하셨도다.


10. 이 때에 경학의 형이 아우를 오라고 사람을 보내온지라. 상제께서 그를 보낸 후에 발을 당기고 가라사대 “속담에 발복이라 하나니 모르고 가는 길에 잘 가면 행이요. 잘못가면 곤란이라” 하시고 곧 그 곳을 떠나 최 창조의 집에 독행하셨도다. 그 곳에 머무시다가 다시 혼자 그 앞 솔밭을 지나서 최창겸에게 이르러 잠시 몸을 두시니 상제께서 계시는 곳을 아는 사람이 없었도다.


11. 원래 경학의 형은 이상한 술객이 경학을 속여 가산을 탕패케 한다는 소문을 듣고 한편으로 경학을 만류하고자 또 한편으로 그 술객을 관부에 고발하려는 심사에서 사람을 보낸 것이니라. 그리하여 경학이 집으로 돌아오는 중도에서 순검을 만나 함께 집에 오니라. 그리고 순검은 상제를 못 찾고 최 창조의 집에 가서도 역시 찾지 못하고 있는 중에 상제께 세배하려고 최창조의 집에 들어선 황응종과 문공신을 구타하였도다.


12. 상제께서 또 三월 어느 날 “학질로도 사람이 상하느냐”고 자현의 지혜를 떠보시니라. 자현이 “학질은 세 축째에 거적을 갖고 달려든다 하나니 이 말이 상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나이다”고 대답하니 상제께서 “진실로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13. 팔순인 자현의 모친이 삼월 어느 날에 학질을 세 축 앓다가 갑자기 죽었도다. 이 소식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학질로 사람이 상한다는 말이 옳다”고 말씀하시니라. 상제께서 자현의 노모를 모실 관속에 누어보셨도다.


14. 상제께서 하루는 자현에게 “박춘경(朴春京)의 집에 가서 관재중 잘 맞는 것을 골라 오라. 내가 장차 죽으리라”고 말씀하시니라. 자현이 “어찌 상서롭지 못한 말씀을 하시나이까”고 여쭈니라. 상제께서 “자현이 나의 죽음을 믿지 않는도다”고 탓하셨도다.


15. 四월 어느 날 김보경의 집에서 공사를 행하시는데 백지 넉 장을 펼치시고 종이 귀마다 ‘천곡(泉谷)’이라 쓰시기에 그 뜻을 치복이 여쭈어 물으니 상제께서 “옛날에 절사한 원의 이름이라”고 가르쳐 주시고 치복과 성환으로 하여금 글을 쓴 종이를 마주 잡게 하고 “그 모양이 상여의 호방산(護防傘)과 같도다”고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갑칠은 상제의 말씀이 계셔서 바깥에 나갔다 들어와서 서편 하늘에 한 점의 구름이 있는 것을 아뢰니 다시 명하시기에 또 나가서 하늘을 보고 들어와서 한 점의 구름이 온 하늘을 덮은 것을 여쭈었더니 상제께서 백지 한 장의 복판에 사명당(四明堂)이라 쓰시고 치복에게 가라사대 “궁을가에 있는 사명당 갱생이란 말은 중 사명당이 아니라 밝은 명자를 쓴 사명당이니 조화는 불법(佛法)에 있으므로 호승예불혈(胡僧禮佛穴)이오. 무병장수(無病長壽)는 선술(仙術)에 있으니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이오. 국태민안(國泰民安)은 군신봉조혈(群臣奉詔穴)이오. 선녀직금혈(仙女織錦穴)로 창생에게 비단 옷을 입히리니 六月 十五日 신농씨(神農氏)의 제사를 지내고 공사를 행하리라. 금년이 천지의 한문(桿門)이라. 지금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니라” 하셨도다.


16. 상제께서 고래의 사제지간의 예를 폐지하시고 종도들에게 평좌와 흡연을 허락하셨도다.


17. 수운(水雲) 가사에 “발동말고 수도하소. 때 있으면 다시 오리라” 하였으니 잘 알아 두라 하셨도다.


18. 어느 날 상제께서 김성국의 집에 오셔서 “용둔(龍遁)을 하리라” 하시고 양지 二十장을 각기 길이로 여덟 번 접고 넓이로 네 번 접어서 칼로 자르신 다음 책을 매여 보시기에 실로 “米”와 같이 둘러매고 오색으로 그 실오리에 물을 들이고 보시기 변두리에 푸른 물을 발라 책장마다 찍어 돌리신 뒤에 그 책장을 다 떼어 풀로 붙여 이어서 네 번 꺾어 접어서 시렁에 걸어 놓으시니 오색 찬란한 문채가 용형과 같으니라. 이에 그 종이를 걷어서 불사르셨도다.


19. 김자현은 六월 어느 날 상제께서 “네가 나를 믿느냐”고 다짐하시기에 “지성으로 믿사옵고 고부화액 때에도 상제를 따랐나이다”고 믿음을 표명하였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장차 어디로 가리니 내가 없다고 핑계하여 잘 믿지 않는 자는 내가 다 잊으리라.” 이 말씀을 듣고 자현은 “제가 모시고 따라가겠나이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다시 “어느 누구도 능히 따르지 못할지니라. 내가 가서 일을 행하고 돌아오리니 그 때까지 믿고 기다리라. 만일 나의 그늘을 떠나면 죽을지니라”고 이르셨도다.


20. 상제께서 六월 열흘께는 심기가 불편하셔서 동곡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청도원 김송환의 집에 들러서 유숙하시니라. 마침 신 경원이 상제를 배알하기에 상제께서 그에게 “네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하시고 양지 한 장을 주어 유(儒).불(佛).선(仙) 석자를 쓰게 하시니라. 상제께서 유자 곁에 이구(尼丘). 불자 곁에 서역(西域)., 선자 곁에 고현(古縣)이라 쓰시고 그 양지를 불사르셨도다. 상제께서 동곡 약방에 가셔서 모든 종도들에게 六月 二十일에 모이라고 통지하셨도다.


21. 二十일에 모든 종도들이 속속 동곡에 모이니 김형렬. 김갑칠. 김자현. 김덕유. 류찬명. 박공우. 신원일. 이치화. 이공삼. 최덕겸 등이오. 채사윤(蔡士允)은 처음으로 동곡에서 시좌하니라. 상제께서 류찬명에게 천문지리 풍운조화 팔문둔갑 육정육갑 지혜용력(天文地理風雲造化 八門遁甲六丁六甲智慧勇力)과 회문산 오선위기혈 무안 승달산 호승례불혈 장성 손룡 선녀직금혈 태인 배례전 군신봉조혈(回文山五仙圍碁穴 務安僧達山胡僧禮佛穴 長城巽龍仙女職錦穴 泰仁 拜禮田群臣奉詔穴)을 쓰게 하고 불사르셨도다.


22. 상제께서 모든 종도를 꿇어앉히고 “나를 믿느냐”고 다짐하시는지라. 종도들이 믿는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다시 “내가 죽어도 나를 따르겠느냐”고 물으시는지라. 종도들이 그래도 따르겠나이다 라고 맹세하니 또 다시 말씀하시기를 “내가 궁벽한 곳에 숨으면 너희들이 반드시 나를 찾겠느냐”고 다그치시니 역시 종도들이 찾겠다고 말하는지라. 상제께서 “그리 못하나니라. 내가 너희를 찾을 것이오.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23. 또 상제께서 “내가 어느 곳에 숨으면 좋을까”고 물으시니 신원일이 “부안에 궁벽한 곳이 많이 있사오니 그 곳으로 가사이다”고 원하니라. 이에 상제께서 아무런 응답이 없으셨도다.


24. 상제께서 벽을 향하여 누우시더니 갑자기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제 온 누리가 멸망하게 되었는데 모두 구출하기 어려우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오” 하시고 크게 슬퍼하셨도다.


25. 그리고 다시 말씀하시니라. “나의 얼굴을 똑바로 보아 두라. 후일 내가 출세할 때에 눈이 부셔 바라보기 어려우리라. 예로부터 신선을 말로만 전하고 본 사람이 없느니라. 오직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내가 장차 열석 자의 몸으로 오리라” 하셨도다.


26. 二十一일에 신원일이 이치화와 채사윤과 그의 처남으로부터 얼마의 돈을 가져왔느니라. 상제께서 신원일에게 돈을 가지고 온 사람의 이름을 써서 불사르게 하고 형렬에게 있는 돈 중에서 일부를 궤 속에 넣으라 하고 남은 것으로는 여러 사람의 양식을 충당케 하셨도다.


27. 상제께서 식사를 전폐하시다가 이렛만에 형렬에게 명하시어 보리밥을 지어 오라 하시므로 곧 보리밥을 지어 올리니 상제께서 그 밥을 보시고 “가져다 두라” 하시니라. 한나절이 지나서 다시 그 보리밥을 청하시는지라. 형렬이 다시 가져다 올리니 벌써 그 보리밥이 쉬었느니라. 상제께서 “절록(絶祿)이라”고 말씀하셨도다.


28. 상제께서 “너희들이 내 생각나면 내가 없더라도 이 방에 와서 놀라” 하셨도다.


29. 상제께서 가라사대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고 하셨도다.


30. 상제께서 속담에 “이제 보니 수원 나그네라 하나니 누구인 줄 모르고 대하다가 다시 보고 낯이 익고 아는 사람이더라는 뜻이니 나를 잘 익혀 두라”고 말씀하셨도다.


31. 상제께서 二十三일 오전에 여러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제 때가 바쁘니라. 너희들 가운데 임술생(壬戌生)으로서 누이나 딸이 있거든 수부(首婦)로 내세우라. 형렬이 “수부로서 저의 딸을 세우겠나이다”고 아뢰이니 말씀하시기를 “세수시키고 빤 옷으로 갈아 입혀서 데려 오라” 하셨도다. 형렬이 명하신 대로 하여 딸을 상제 앞에 데려 오니라. 상제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약장을 방 한가운데 옮겨 놓게 하시고 그의 딸에게 약장을 세 번 돌고 그 옆에 서게 하고 경석에게 “대시 태조 출세제왕 장상 방백 수령 창생점고 후비소(大時太祖出世帝王將相方伯守令蒼生點考后妃所)를 쓰라 이르시니라. 경석이 받아 쓸 제 비(妃)를 비(妣)로 잘못 쓴지라. 상제께서 그 쓴 종이를 불사르고 다시 쓰게 하여 그것을 약장에 붙이게 하고 “이것이 예식이니 너희들이 증인이니라”고 말씀을 끝내고 그의 딸을 돌려 보내시니라. 상제께서 경석에게 그 글을 거둬 불사르게 하셨도다.


32. 상제께서 이 날에 약방 마루, 뜰, 싸리문 밖에 번갈아 눕고 형렬에게 업혀 그의 집에 가서 누우셨다가 다시 약방으로 돌아오시기를 네 다섯 번 반복하시니라. 형렬이 아주 지치면 경석이 대신하여 상제를 업고 두 번 왕복하고 그리고 다섯 사람이 머리 팔 다리를 각각 붙잡고 상제를 메고 약방에 모시니라. 상제께서 누워 가라사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쉬우니라. 몸에 있는 정기만 흩으면 죽고 다시 합하면 사나니라” 하셨도다.


33. 경석으로 하여금 양지에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일순 호남 서신 사명(全羅道古阜郡優德面客望里姜一淳湖南西神司命)이라 쓰게 하고 그것을 불사르게 하시니라. 이 때에 신원일이 상제께 “천하를 속히 평정하시기 바라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내가 천하사를 도모하고자 지금 떠나려 하노라” 하셨도다.


34. 二十四일 이른 아침에 경석을 불러 흘겨보시면서 “똑똑치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이냐”고 나무라셨도다.


35. 상제께서 수박에 소주를 넣어서 우물에 담그었다가 가져오게 하셨도다. 그 수박을 앞에 놓고 가라사대 “내가 이 수박을 먹으면 곧 죽으리라. 죽은 후에는 묶지도 말고 널 속에 그대로 넣어두는 것이 옳으니라” 하셨도다. 상제께서 약방 대청에 앉아 병렬에게 꿀물 한 그릇을 청하여 마시고 형렬에게 기대어 가는 소리로 태을주를 읽고 누우시니라. 이날 몹시 무더워 형렬과 종도들이 모두 뒤 대밭가에 나가 있었도다. 응종이 상제께서 계신 방이 너무 조용하기에 이상한 마음이 들어 방을 들여다보니 상제께서 조용히 누워 계시는데 가까이 가서 자기의 뺨을 상제의 용안에 대어보니 이미 싸늘히 화천(化天)하신지라. 응종이 놀라서 급히 화천하심을 소리치니 나갔던 종도들이 황급히 달려와서 상제의 돌아가심이 어찌 이렇게 허무하리오 하며 탄식하니라. 갑자기 뭉게 구름이 사방을 덮더니 뇌성벽력이 일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화천하신 지붕으로부터 서기가 구천(九天)에 통하는도다. 때는 단기 四천 二백 四십二년 이조 순종 융희 三년 기유 六월 二十四일 신축 사시이고 서기로는 一九0九년 八월九일이었도다.


36. 이 때에 여러 종도가 떠나고 김형렬․차경석․박공우․김자현․김갑칠․김덕찬 등 여섯 사람만이 상제를 지켜보니라. 부친이 고부 객망리 본댁으로부터 동곡에 오시고 형렬은 뜻밖의 변을 당하여 정신을 수습치 못하는지라. 종도들이 궤 속에 간수하였던 돈으로 치상을 끝내고 남은 돈을 본댁으로 보냈도다.


37. 치상 후에 형렬과 경석은 상제의 부친을 모시고 객망리에 가서 모친을 조문하고 다시 정읍 대흥리에 가서 상제께서 간수하신 현무경(玄武經)을 옮겨 썼도다.


38. 상제께서 거처하시던 방에서 물이 들어 있는 흰 병과 작은 칼이 상제께서 화천하신 후에 발견되었는데 병마개로 쓰인 종이에
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
의 글귀와 다음과 같은 글들이 씌어 있었도다.
病有大勢
病有小勢
大病無藥 小病或有藥
然而大病之藥 安心安身
小病之藥 四物湯八十貼
祈禱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至氣今至願爲大降
大病出於無道
小病出於無道
得其有道 則大病物藥自效 小病物藥自效
至氣今至四月來 禮章
醫統
忘其父者無道
忘其君子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
病勢
有天下之病者 用天下之藥 厥病乃兪
聖父
聖子 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在全州銅谷生死辦斷
聖身
大仁大義無病
三界伏魔大帝神位遠鎭天尊關聖帝君
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
孔子魯之大司寇
孟子善說齊梁之君
西有大聖人曰西學
東有大聖人曰東學 都是敎民化民
近日日本文神武神
幷務道通
朝鮮國 上計神 中計神 下計神 無依無托 不可不文字戒於人
宮商角微羽 聖人乃作 先天下之職 先天下之業 職者醫也 業者統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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