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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행록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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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록(行錄) 2장 

 


1. 상제께서 정유(丁酉)년에 다시 정남기(鄭南基)의 집에 글방을 차리고 아우 영학(永學)과 형렬(亨烈)의 아들 찬문(贊文)과 그 이웃 서동들을 가르치셨도다. 이 때에 유불선 음양참위(儒佛仙陰陽讖緯)를 통독하시고 이것이 천하를 광구함에 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시고 얼마동안 글방을 계속하시다가 인심과 속정을 살피고자 주유의 길을 떠나셨도다.


2. 금구 내주동을 떠나신 상제께서는 익산군 이리(裡里)를 거쳐 다음날 김일부(金一夫)를 만나셨도다. 그는 당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교법을 문도에게 펼치고 있던 중 어느 날 일부가 꿈을 꾸었도다. 한 사자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일부에게 강사옥(姜士玉)과 함께 옥경(玉京)에 오르라는 천존(天尊)의 명하심을 전달하는도다. 그는 사자를 따라 사옥과 함께 옥경에 올라가니라. 사자는 높이 솟은 주루 금궐 요운전(曜雲殿)에 그들을 안내하고 천존을 배알하게 하는도다. 천존이 상제께 광구천하의 뜻을 상찬하고 극진히 우대하는도다. 일부는 이 꿈을 꾸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돌연히 상제의 방문을 맞이하게 되었도다. 일부는 상제께 요운(曜雲)이란 호를 드리고 공경하였도다.


3. 상제께서 이곳에 며칠 머물고 다시 계속하시어 경기(京畿)․황해(黃海)․평안(平安). 함경(咸鏡). 경상(慶尙)도의 각지에로 두류 유력하셨느니라. 어느 날 상제께서 전주부에 이르시니 부중 사람들이 상제를 신인으로 우러러 모시니라.


4. 주유하시다가 상제께서 함열(咸悅)에 이르셔서 “만인함열(萬人咸悅)”이라 기뻐하셨도다.


5. 상제께서 어느 때 내장산(內藏山)에 가셨을 때에
世界有而此山出 紀運金天藏物華 應須祖宗太昊伏 道人何事多佛歌
라고 읊으셨도다.


6. 또 어느 때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步拾金剛景 靑山皆骨餘 其後騎驢客 無興但躊躇
를 외워 주시니라.


7. 상제께서 삼 년 동안 주유하신 끝에 경자(庚子)년에 고향인 객망리에 돌아오셔서 시루산 조모님의 묘를 면례하시니 이 때 류서구(柳瑞九)가 지사(地師)로서 상제를 보좌하였도다. 이후에 상제께서 항상 시루산 상봉에서 머리를 푸시고 공부를 하셨도다. 그러던 어느 날 호둔하고 앉아 계셨을 때 마침 나뭇꾼들이 지나가다가 이것을 보고 기겁하여 상제의 부친께 아뢰는지라. 부친께서도 당황하여 시루봉에 오르니 범은 보이지 않고 상제께서 태연자약하게 앉아서 공부하고 계시는 것만이 보였도다.


8. 상제께서는 객망리 시루봉에서 공부하시다가 밤이 되면 간간이 유덕안의 집에 내려가셔서 쥐눈이콩 한 줌을 얻어 냉수와 함께 잡수시곤 하셨도다. 상제께서 덕안의 아들 칠룡(七龍)을 바라보시고 “네가 나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구나”고 말씀하셨느니라. 상제께서 시루봉에 오르시면 산천이 크게 울리도록 소리를 지르셨도다. 이 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두려워 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였도다.


9. 상제께서 시루산에서 공부하시다가 이따금 산밑에 있는 샘터 너머에서 우시기도 하셨는데 한번은 부친께서 밥을 가지고 시루봉에 오르다가 그 광경을 보았도다.


10. 그러시다가도 다시 공부를 계속하셨는데 어느 날 시루봉에서 진법주(眞法呪)를 외우시고 오방신장(五方神將)과 四十八장과 二十八장 공사를 보셨도다. 이후에 상제께서 목에 붉은 수건을 걸고 쌍정리(雙丁里)에 있는 김기진(金基鎭)의 집에 가셔서 그에게 공사에 관해서 말씀하셨도다. 이 집에 동리 사람들이 많이 모이곤 하였도다.


11. 상제께서 공부하시는 소문이 그 지방에 전해지자 고부(古阜) 경무청은 상제께서 요술공부를 한다 하여 붙잡으려고 순검들을 보내오니 상제께서는 순검이 오는 것을 미리 아시고 삿갓을 쓰고 길가에 나가서 안개를 짓고 앉아 계셔도 순검들이 몰라보고 지나가곤 하였도다.


12. 상제께서 신축(辛丑)년 五월 중순부터 전주 모악산 대원사(大院寺)에 가셔서 그 절 주지승 박금곡(朴錦谷)에게 조용한 방 한 칸을 치우게 하고 사람들의 근접을 일체 금하고 불음 불식의 공부를 계속하셔서 四十九일이 지나니 금곡이 초조해지니라. 마침내 七월 五일에 오룡허풍(五龍噓風)에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여시고 방안에서 금곡을 불러 미음 한잔만 가지고 오라 하시니 금곡이 반겨 곧 미음을 올렸느니라. 잠시 후에 상제께서 밖으로 나오시니 그 입으신 옷이 보기에 민망스러울 정도로 남루한지라. 주지승 금곡이 곧 상제의 본댁에 사람을 보내 의복을 가져오게 하였더니 부인 정씨(鄭氏)는 의복을 내어놓으며 불경한 말을 하니라. 이것은 평소에 상제께서 가사를 돌보시지 않았던 불만에서 나온 소치였도다. 금곡이 그 의복을 상제께 올리니 가라사대 “이 옷에 요망스런 계집의 방정이 붙었으니 속히 버리라” 하시고 입지 않으셨다. 이 일을 금곡이 다시 사람을 시켜 부인에게 전하니 그제야 비로소 부인 정씨가 뉘우치고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다시 새 옷을 올렸도다.


13. 그 후 어느 날 금곡이 상제를 정중하게 시좌하더니 상제께 저의 말을 말씀하여 주시기를 청원하였도다. 상제께서 가라사대 “그대는 전생이 월광대사(月光大師)인 바 그 후신으로서 대원사에 오게 되었느니라. 그대가 할 일은 이 절을 중수하는 것이고 내가 그대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리니 九十세가 넘어서 입적하리라” 하시니라.


14. 하루는 상제께서 가라사대 “대범 판 안에 있는 법을 써서 일하면 세상 사람의 이목의 저해가 있을 터이니 판 밖에서 일하는 것이 완전하리라”고 이르셨도다.


15. 상제께서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시니 대원사 골짜기에 각색의 새와 각종의 짐승이 갑자기 모여들어 반기면서 무엇을 애원하는 듯하니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너희 무리들도 후천 해원을 구하려 함인가” 하시니 금수들이 알아들은 듯이 머리를 숙이는다. 상제께서 “알았으니 물러들 가있거라”고 타이르시니 수많은 금수들이 그 이르심을 좇는도다.


16. 그리고 상제께서 어느 날에 가라사대 “나는 곧 미륵이라.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육장금신(六丈金神)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고 하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아래 입술을 내어 보이시니 거기에 붉은 점이 있고 상제의 용안은 금산사의 미륵금신과 흡사하시며 양미간에 둥근 백호주(白毫珠)가 있고 왼 손바닥에 임(壬)자와 오른 손바닥에 무(戊)자가 있음을 종도들이 보았도다.


17. 김형렬이 어느 날 상제를 모시고 있을 때 “정(鄭) 집전이라 하는 사람은 지식이 신기한 사람이외다. 저의 증조가 계실 때에 저의 집에 오랫동안 머물었나이다. 동리 사람들이 보릿고개를 앞에 두고 걱정하였는데 이 걱정을 알고 금광을 가리켜 주어서 고생을 면케 하였으며 많은 영삼(靈蔘)을 캐어 병든 사람을 구제하였고 지난 임술(壬戌)년에 경상도에서 일어난 민란을 미리 말하였나이다. 저의 증조께서 그의 지식을 빌어 명당 하나라도 얻어서 그 여음을 후세에 끼치지 못하였나이다. 이것이 오늘날 저의 한이 되는 일이옵니다”고 여쭈는지라. 듣고만 계시던 상제께서 가라사대 “그런 휼륭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어찌 남인 너의 집의 밥을 헛되게 먹으리오. 천리의 극진함이 털끝 만한 인욕의 사가 없도다” 하셨도다.


18. 상제께서 어느 날 형렬에게
夫用兵之要在崇禮而重綠 禮崇則義士至 祿重則志士輕死
故祿賢不愛財賞功不逾時 則士卒並敵國削
을 외워 주시고 기억하라고 이르셨도다.


19. 김도일(金道一)이 앓고 난 뒤에 어느 날 지팡이를 짚고 상제를 뵈러 갔도다.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그 지팡이를 빼앗아 꺾어 버리시니 그는 할 수 없이 서있게 되었도다. 이후부터 그는 요통이 쾌차하였느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도일에게 가라사대 “문 밖에 나가서 서쪽 하늘에 붉은 구름이 떠있나 보라”고 하시고 그가 나가보고 들어와서 그러함을 아뢰였도다. 다시 상제께서 가라사대 “금산(金山) 도득(圖得)하기가 심히 어렵도다”고 하셨도다.


20. 상제께서 계묘년에 객망리에 계셨도다. 삼월 어느 날에 형렬에게 “신명에게 요금을 줄 터이니 여산 윤공삼(礪山尹公三)에게 가서 돈을 얻어서 오라” 하시니 옆에서 시좌하고 있던 김 병욱이 전주 거부인 백남신(白南信)을 천거하는도다. 상제께서 형렬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하시고 위정 술을 많이 드신 후에 신발을 벗으신 채 대삿갓을 쓰시고 병욱을 앞세우고 그의 집에 가시니라. 이 때 장흥해(張興海)가 와 있었으며 마침 남신이 병욱의 집에 들어서는지라. 병욱이 상제께 손님이 온 것을 아뢰이니 누워 계시던 상제께서 몸을 일으켜 앉으시나 처음 대하는 예를 베풀지 않으시고 다짜고짜 그에게 “그대가 나의 상을 평하라” 말씀하시니 그가 “상리를 알지 못하나이다” 하거늘 상제께서 “상리는 참되지 못하나니 속평을 하라” 하시니 그가 “속평에 얼굴이 방정하고 풍후하면 부하고 미간 인당에 백호주가 있으니 가히 부귀 쌍전하리로 소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웃으시며 “그대의 상을 평하면 입가로 침이 부글부글 나오니 이는 소가 마구 삭이는 격이라. 가히 부호가 되리라. 내가 쓸 곳이 있으니 돈 십만 냥을 가져오라” 이르시니라. 남신이 묵묵히 말이 없다가 “칠만 냥을 드리겠나이다. 어떠하나이까” 여쭈니라. 상제께서 응낙하시지 않으시니 남신이 다시 여쭈니라. “십만 냥을 채우려면 서울에 있는 집까지 팔아야 하겠나이다.” 그는 드디어 십만 냥을 만들어 드릴 것을 응락하는도다. 병욱이 증인이 되어서 증서를 써서 상제께 올리니 상제께서 그 증서를 받으셔서 병욱에게 맡기시니 병욱과 흥해가 세상에 드문 도량이심을 탄복하였도다. 그 후 증서를 상제께서 불사르셨도다. 이로 인하여 백남신이 상제를 좇기 시작하였도다.


21. 계묘년 가을에 가뭄이 동곡(東谷)에 계속되었도다. 김성천(金成天)은 동곡에서 밭을 부쳐 업으로 삼으니라. 그 나물밭에 가뭄 때문에 뜨물이 생겨 채소가 전멸케 되었는지라. 상제께서 그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죽을 사람에게 기운을 붙여 회생케 하는 것이 이 채소를 소생케 하는 것과 같으니라” 하시고 곧 비를 내리게 하셨도다. 그 후에 상제께서 출타하셨다가 얼마 후에 돌아오셔서 자현에게 “김성천의 나물밭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시니라. 자현이 “지난 비로 소생되어 이 부근에서는 제일 잘 되었나이다”고 대답하였도다. “사람도 일도 이와 같아서 병든 자와 죽는 자에게 기운만 붙이면 일어나니라”고 말씀하셨도다.


22. 계묘년도 저물어 가고 추수가 끝나 농부들이 벼를 들에서 말리기에 바쁜지라. 상제의 부친도 벼를 말리기 바쁘고 새와 닭을 쫓기에 애를 쓰느니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새 짐승이 한 알씩 쪼아 먹는 것을 그렇게 못 마땅히 여기니 사람을 먹일 수 있겠나이까”고 말씀하시면서 만류하셨도다.


23. 상제께서는 일진회가 일어난 후부터 관을 버리시고 대삿갓을 쓰시더니 정읍에 가신 후부터 의관을 갖추셨도다.


24. 안필성(安弼成)이 못자리를 하려고 볍씨를 지고 집을 나서려는데 상제를 뵈었도다. 상제께서 “쉬었다 술이나 마시고 가라”고 말씀하셨으되 필성이 사양하는지라. “못자리를 내기에 바쁜 모양이니 내가 대신 못자리를 부어주리라” 하시고 지게 위에 있는 씨나락 서너 말을 망개장이 밭에 다 부으셨도다. 그는 아무런 원망도 하지 못하고 앉아서 주시는 술을 마시면서도 근심하였도다. 주모가 들어와서 씨나락은 가지고 온 그릇에 그대로 있는 것을 알리는도다. 필성은 이상히 여겨 바깥에 나가 뿌려서 흩어졌던 씨나락이 한 알도 땅에 없고 그대로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을 보고 전보다 한층 더 상제를 경대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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